인간은 간사해 (드디어 풍경이 보인다)

VF day3 San Miniato - Chianni

by Soyeon

15 aprile 2025 Day3

San Miniato - Chianni 27km

Ostello Sigerico €17

*no kitchen but paid dinner & breakfast



진흙길



아침에 비가 살짝씩 오더니 비가 그쳤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러나 며칠간 비가 욌던 탓에 길은 진흙범벅이어서 아주 미끄럽다. 이런 길 이제 뭐 마스터됐다.



road to Rome



걷다 보니 나타난 조형물. 로마까지 가는 길을 걷고 있구나. 나는 종교적 이유로 걷는 것도 아니고 굳이 로마까지 걸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에 별로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만 기념사진은 남겼다.



드디어 보이는 초록색 풍경들



날이 개어간다. 햇빛이 난다. 오랜만에 만난 햇빛이라 반가웠는데 동시에 갈증이 밀려왔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와서 30km를 걷는 동안 물 한 모금도 안 마셨다. 비가 너무 와 중간에 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사람 참 간사하다. 그렇게 지치게 하던 비가 그쳤는데 바로 더위와 갈증에 고통스럽다.



빅 벤치



길 위에서 만난 빅 벤치. 사실 여기까지 올라가려면 비아 프란치제나 길에서 구글맵상 1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래 1분이니 뭐 한번 가보지 했는데 경사가.. 아주 가팔랐다. 1분 거리라도 무시히지 말자. 여기까지 고생해서 올라온 거 배낭 커버를 벗기고 조금 예쁘게 인증샷을 찍고 싶었으나 그럴 힘이 없었다. 저게 최선이었다.



음수대



빅벤치에 올라갔다오면서 남은 물을 다 마셔버렸다.

쭉 비가 왔던지라 중간중간 길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진흙탕 물웅덩이 물을 마셔도 죽진 않을 것 같은데?‘


음수대가 곧 나온다는 표지판이 보이길래 믿고 걸어본다. 2km, 1km.. 음수대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목마름에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이런 일도 다 겪어본다. 다행히 꿀 같은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려 또 걷는다.



예뻐보이던 길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길이 예뻐 보여 사진을 찍는다. 거의 다 와간다. 오늘도 꽤나 긴 여정이었지만 다 젖지 않음에 감사했다.


숙소에 도착했다. 앞면에서 안 보이지만 뒤로 돌아들어가니 예쁜 정원과 넓은 공간이 있었다. 사진을 왜 안 남겼는지 아쉽다. 아마 오랜만에 본 햇빛 때문에 더 예쁘게 기억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일출신 필립과 아르헨티니 출신 니콜라스를 만났다. 필립은 쭉 로마까지 가는데 큰 키로 아주 뛰어다닌다. 나보다 며칠 먼저 로마에 도착할 것 같디. 니콜라스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데 부활절 연휴를 맞아 잠시 일주일간 왔다고 한다. 시에나에서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숙소의 저녁은 돈을 내야 하는데 내 기준에선 조금 비싸 숙소 근처 주유소에 달려있는 바에서 파니노로 저녁을 때웠다. 나는 사람들과 저녁 먹으며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오늘만 날은 아니니 다음 기회를 노려본다.


저녁도 스킵했겠다, 나에겐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바로 다음 숙소들 예약하기. 부활절 연휴라서 미리 해놓지 않으면 숙소를 찾기가 힘들어 걷기를 중단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았고 이게 이 길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장 큰 스트레스요인이었다. 사실 이 전 숙소들에서도 다음 숙소 예약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집중하지 못했다.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켜 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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