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VF day8 Siena - Ponte d’arbia

by Soyeon

20 aprile 2025 Day8

Siena - Ponte d’arbia 27km

Ostello Centro Cristi (D)

*kitchen





발톱에 멍이 든 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엄청 아픈 건 아닌데 불편한 느낌이다. 이전에 두 번의 까미노에서 겪어보지 못한 거라 조금 무섭긴 한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생각해 보니 여행자보험도 안 들고 왔네? 유럽을 너무 집같이 생각하나 보다.





시에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난다. 이틀간 잘 쉬었다. 오늘이 부활절 당일이라 시에나 대성당에서 아침 8시의 santa messa를 듣고 출발하려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어 포기했다. 어제저녁 거의 2시간 정도 되는 미사에 참여했으니 충분하지 않나 싶다.


새로운 시작같은 느낌이든다. 주로 유러피안들이 걷는데 보통 일주일씩 와서 걷는다. 루카 - 시에나, 시에나 - 비테르보 이렇게. 시에나를 떠나며 그동안 같이 걸었던 친구들의 대부분은 다들 집으로 돌아간다. 늘 그렇듯 아쉽지만 이게 인생인 것을.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음을.





고양이 Milù 와 함께 걷는 이탈리안 커플을 만났다. 멀리서 보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게 맞나? 진짜 고양이인가 했다. 남자분이 시칠리아분이셔서 그것도 내가 살았던 시라쿠사에서 가까운 렌티니, 반가움에 짧은 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편하지 뭐야. 게다가 밀루가 나를 좋아해서 자꾸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고양이와 같이 가기에 본인들만의 속도로 걷고 있어 아마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일 것이지만 연락처와 인스타그램을 주고받아서 사진도 받을 수 있었다.





이제야 보이는 토스카나의 풍경. 사람들이 시에나부터 풍경이 훨씬 예쁘다고 하는데 역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다. 초록색 들판과 저 길쭉한 전형적인 토스카나를 연상시키는 풍경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오늘의 만남은 풀리아 바리 출신의 안젤로. 순례길을 참 좋아하신다. 배낭에 순례길 배지들이 멋있게 붙어있었다. 순례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이 날은 날씨가 아주 오락가락해 우비를 입으면 해가 쬐고 벗으면 비가 다시 왔다. 안젤로와 몇 번을 입고 벗고를 반복했다.



La Locanda del Trompalocchio



Badia Pozzeveri에서 만난 잔니 아저씨가 추천해 준 식당. 주인분이 아주 친절하시다 그랬는데 정말 그랬다. 그녀의 웃음에 힘들었던 것들이 다 녹아내리는 느낌. 미소는 그렇게나 강력하다. 나는 배는 안 고팠기에 카푸치노 한잔만 마시고 떠난다.


“Buona Pasqua”라고 말하니 주인분과 일하시는 분들 모두가 웃는다. 조심히 잘 걸으라는 응원을 받았다.





비가 오다 말다 오다 말다. 그래도 퍼붓는 비보다는 나으니 불평할 수 없다. 오늘도 신발은 코끼리발이 된다.





또 멋진 풍경을 지나 다리를 건너 당나귀들을 지나면 숙소가 나온다. 숙소가 여는 딱 제시간에 도착했다.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아마도 10-20대가 같이 관리하신다. 부활절 연휴인데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손자가 기특(?)해 보였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여기 문화이기는 하지만 순례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할아버지를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손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숙소의 마당은 흰색의 이름 모를 꽃으로 뒤덮여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시는 오스트리아 부부분들을 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잘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들만의 아름다운 공간이 완성되었다.


오늘도 한국분의 발자취를 만났다. 숙소 주인 할아버지께서 한국분들 굉장히 많이 오신다며 이유가 뭐인 것 같냐며 물어봤다. 올해는 특히 희년이라 종교적 이유일수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한국인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여태껏 한분도 못 만나서 좀 아쉬웠는데 길이 끝나기 전에 한분은 만나 얘기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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