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맞는 생일이란

VF day10 San Quirico d’Orcia - Gallina

by Soyeon

22 aprile 2025 Day10

San Quirico d’Orcia - Gallina 22km

La Vecchia Posta €18

*kitchen





오늘도 마르게리타와 잔마르코와 함께한다. 산 퀴리코에서도 같은 숙소, 심지어 산퀴리코에서 라디코파니가 30킬로가 넘어 한번에 가지 않고 중간에 갈리나에서 자고 가는데 갈리나에서도 같은 숙소였다. 우린 이렇게 함께 가게 되었다. 아침부터 먹는다. 내가 본 이탈리아인들 중 처음으로 보는 아메리카노 먹는 이탈리아인들. 자기네들도 안단다 본인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오늘도 토스카나의 멋진 풍경을 감상해 준다. 발도르차 구간이 가장 예쁘다고 하던데 그곳이 여기다. 오늘은 짧게 걷기도 하고 중간에 bagno (천연 온천)을 지나는 날이라 또 기대가 된다.



bagno vignoni



처음 와보는 이탈리아 천연 온천. 생각하던 만큼 물이 따뜻하지도 않고 규모도 작고 물이 고여있어 지저분해서 친구들은 실망한 눈치였다. 중간 부분으로 다시 올라가 그나마 깨끗한 물에 몸을 담가본다. 물은 살짝 차가웠고 유황냄새는 나지 않았다. 여기보다는 내일 걷는 곳 근처의 온천인 Bagni San Filippo를 가보라고 추천한다. 주변이 나무로 뒤덮여있고 규모도 훨씬 크고 물도 따뜻하다고 한다. 단점은 유황온천이라 냄새가 안 좋다고.





물놀이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하러 시내로 올라왔다. 어제 교황님이 돌아가셨으니 오늘 신문 앞면에 교황님의 죽음이 다뤄진다.





바뇨도 충분히 즐겼겠다. 우리는 다시 갈길을 간다. 토스카나 상징의 모습이 쭉 보인다.





잔마르코가 시칠리아 출신 가수의 노래를 들려준다. 몇몇 시칠리안 단어가 들린다. 반갑게도 가수는 시라쿠사 출신이었다. 그 후로도 다른 가수 노래들도 들려줬는데 이 가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조금 흐리고 천둥이 많이 치기는 했는데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대신 하늘이 노한 것 같은 천둥소리를 내내 들으면서 왔다.





순례자들을 위한 간이 쉼터가 보인다. 오늘 짧다고 만만하게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갈길이 멀어 조금 쉬다 가기로 한다.





여태껏 걸었던 곳의 풍경들 중 가장 예뻤던 곳. 토스카나 그 자체이다. 점점 숙소와 가까워져서 기운이 난다.





이런 예쁜 주방을 가진 숙소에 도착했다. 주방이 너무 마음에 들어 마르게리타가 오늘은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해 먹고 싶다고 한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 친구들이 나가 장을 봐왔다. 내가 먹어보고 싶었던 이 지역 특산품인 pici all’aglione였다! Badia Pozzeveri에서 머물렀을 때 숙소 주인아저씨인 잔니 아저씨가 이 지역 가면 먹어보라고 했던 그 음식이었다!





오늘은 사실 마르게리타의 30번째 생일이었다. 나랑 동갑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반가웠다. 비록 본인이 요리한 것이지만 생일상 치고 나쁘지 않았다. 생일이라는 것을 바로 전날 밤에 알아서 준비할 수 있던 게 아무것도 없어 아쉬웠다. 그래도 오늘 멋진 풍경도 보고 바뇨도 했으니 조금 특별했다고 할 수 있겠지? 우린 이렇게 또 추억을 만들었다.


나의 첫 순례길이었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길이 생각났다. 남동생과 같이 걸었는데 길 위에서 생일을 맞았었다. 순례자들 모두 모여 저녁 먹기 전 한잔씩 하고 있는데 영국인 친구 블레시가 케이크를 사서 깜짝 파티를 열어준 기억이 난다. 블레시의 도움 없었으면 케이크도 못 먹었을 텐데.


남동생도 이 순간을 기억하겠지? 마르게리타도 특별한 추억으로 오래 이 순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로마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교황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