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는 혁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The Revolutionary City: Urbanization and the Global Transformation of Rebellion』 (혁명 도시: 반란의 도시화와 세계적 변혁)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이자 러시아 및 동유럽 정치 전문가인 마크 R. 바이스팅어의 저서다. 그는 냉전 이후의 민족주의, 국가 붕괴, 그리고 정치적 동원에 대한 연구로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책을 통해 혁명의 새로운 흐름을 분석하며 혁명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이 책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혁명이 더 이상 과거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혁명은 주로 사회 계급 구조를 바꾸려는 '사회 혁명'의 형태를 띠었고, 농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장기간의 내전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혁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도시 시민 혁명'으로 변모했다. 이는 도시화, 세계화, 그리고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바이스팅어는 이 책에서 혁명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근접성 딜레마'와 '탄압-교란 균형'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혁명 세력은 권력의 중심부인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탄압에 노출되는 위험은 커지지만,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교란 능력 또한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혁명이 총과 폭력을 사용했다면, 현대의 도시 시민 혁명은 '숫자의 힘'을 활용한 비무장 대규모 시위를 통해 이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The Revolutionary City’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주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의 역설: 도시 시민 혁명은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했지만, 혁명 이후의 정권은 종종 불안정했으며 부패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혁명만으로 완성될 수 없으며, 혁명 이후의 제도적 안정과 거버넌스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과 혁명: 소셜 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혁명의 대규모 동원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혁명 세력의 리더십을 분열시키고 전략적 통일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정권의 디지털 감시 기술이 발전하면서 혁명 세력은 새로운 형태의 탄압에 직면하고 있다.
혁명의 진화: 혁명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춰 변화한다. 바이스팅어는 미래의 혁명 역시 도시에서 일어날 것이며, 불평등, 포퓰리즘, 민주주의의 위기 등 새로운 문제의식에 의해 재구성될 것이라 예측한다.
이 책은 혁명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혁명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정치적 과제와 미래를 조망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1905년 키이우에서 발생한 봉기와 거의 한 세기 후인 2004년 오렌지 혁명은 혁명의 근본적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05년의 봉기는 수십만 명의 농민 반란과 노동자 파업을 포함했지만, 결국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낳고 정권 전복에는 실패했다. 반면 2004년의 혁명은 비폭력적인 대규모 시민 동원을 통해 불과 17일 만에 정권을 무너뜨렸고, 사망자는 단 한 명에 그쳤다. 이처럼 혁명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원인은 바로 '도시화'다.
혁명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과거의 혁명은 계급 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한 '사회 혁명'이었다. 사회 혁명은 종종 농민 봉기와 같은 농촌의 문제를 기반으로 장기간의 유혈 내전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도시 시민 혁명'의 형태로 혁명이 진화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인구, 권력, 부가 도시로 집중되는 도시화의 흐름이 있었다. 도시 시민 혁명은 무장 봉기나 시가전 대신 '숫자의 힘'을 활용한 대규모 시위와 비폭력적인 저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혁명 양상의 변화는 혁명의 빈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혁명의 성격과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혁명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혁명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혁명을 정권 교체와 실질적인 정치적 또는 사회적 변화를 목표로 자국민이 기존 정부를 대규모로 포위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혁명을 군사 쿠데타나 외세의 개입과 구분하며, 대규모 동원이라는 특징을 강조한다. 또한, 혁명은 사회운동이나 일회성 시위처럼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권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투쟁과 포위의 과정이다.
도시가 혁명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면서, 혁명의 양상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전 세계 도시 인구는 13%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52%를 넘어섰다. 이처럼 인구의 집중은 혁명가들이 대규모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텔레비전, 소셜 미디어와 같은 현대 통신 기술은 대규모 군중을 실시간으로 조직하고, 혁명적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변화는 비무장 시위가 정권의 탄압에 맞서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게 만들었다. 혁명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도시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했다.
혁명 연구는 오랫동안 사회 계급 관계나 정치 체제의 구조적 취약성 등 사회 내부의 요인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혁명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왜 농촌 혁명과 도시 혁명이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 책은 혁명 분석의 새로운 틀로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혁명이 일어나는 물리적 장소, 즉 도시와 농촌의 고유한 특성이 혁명의 전개와 결과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역학 관계의 핵심에는 '근접성 딜레마'가 있다. 이는 혁명 세력이 정권의 권력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정권의 압도적인 무력에 노출되는 위험이 커지는 동시에, 정권을 직접적으로 교란하고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력도 극대화된다는 이중적인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혁명 세력은 정권의 탄압을 피하면서 어떻게 교란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적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농촌 혁명은 이 딜레마를 '공간적 재배치'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권력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농촌은 험준한 지형과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해 정권의 물리적 감시와 탄압을 피하기에 유리한 공간이다. 혁명가들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지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교란 능력'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농촌 혁명은 장기간의 게릴라전이나 내전으로 전개되는 경향을 보이며,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심장부인 도시를 장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반면, 도시 혁명은 정권의 심장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정권을 단기간에 교란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가들은 정권의 압도적인 무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도시 무장 봉기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혁명의 양상도 바뀌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혁명가들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숫자의 힘'을 활용한 새로운 전략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 대규모의 비무장 군중은 정권의 무력에 대한 효과적인 방패가 되고, 동시에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켜 정권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또한 도시 혁명은 시간적 측면에서도 농촌 혁명과 다르다. 농촌 혁명은 수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전투와 긴 대기 기간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도시 혁명은 권력 중심에 대한 근접성 때문에 수일 또는 수주 안에 그 결과가 결정된다. 이러한 빠르고 집중적인 전개 속도는 정권과 야권 모두에게 오판과 실수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예기치 않은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도시의 혁명적 역학 관계는 인구 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넘어 혁명의 전개 과정과 결과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혁명의 공간적 차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혁명을 '정권 교체와 실질적인 정치적 또는 사회적 변화를 목표로 자국민이 기존 정부를 대규모로 포위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혁명을 대규모 시민 동원이 수반되지 않는 군사 쿠데타나, 정권 교체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가 없는 사회 운동과 명확하게 구분한다. 혁명 사건 하나하나를 '혁명적 에피소드'라는 분석 단위로 삼아, 지난 한 세기 동안 혁명의 발생 빈도, 성공률, 전술, 그리고 결과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혁명의 빈도는 증가했지만, 혁명의 성격은 크게 변했다. 과거의 혁명은 주로 사회 계급 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하는 '사회 혁명'이었으나, 이제는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도시 시민 혁명'이 혁명의 주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인구, 권력, 부가 도시로 집중되는 도시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냉전 시대까지 혁명 이론의 중심이었던 사회 혁명은 1979년 니카라과 혁명 이후 사실상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는 사회 혁명이 '농업 관료 사회'라는 특정 사회 구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토지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지주 계급의 정치적 기반이 약화되었고, 농민들의 혁명적 잠재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도시 혁명은 꾸준히 증가했다. 1985년 이후 발생한 혁명 중 3분의 2가 도시에서 일어났으며, 그중 상당수는 도시 시민 혁명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로 설명된다. 먼저, 1900년 13%에 불과했던 전 세계 도시 인구가 2014년 54%로 급증하면서, 혁명의 주된 공간은 자연스럽게 도시로 옮겨졌다. 또한, 독립 국가의 수가 늘어나고 국가 권력이 강화되면서 혁명의 초점은 식민지 해방에서 국가 내부의 부패한 정권 타도로 바뀌었다. 특히 도시 혁명은 국가 권력이 가장 강력하게 집중된 도시에서 발생하며, 국가의 억압에 대한 반발이 주요 원인이 된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이 주도하는 단일 강대국 체제가 형성되고 민주주의 확산이 가속화되자, 권위주의 정권들은 국내외의 압력에 더욱 취약해졌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 변화는 도시 시민 혁명이 확산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도시 시민 혁명은 과거의 혁명과는 다른 사회적 기반을 가졌다. 과거의 혁명이 소수의 무장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도시 시민 혁명은 주로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 중산층이 이끄는 대규모 비무장 저항 방식을 채택했다.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보다는 정권의 부패와 억압에 대한 분노를 더 강하게 표출했다. 이러한 혁명 전술과 기술의 변화는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대규모 군중을 빠르게 동원하고 혁명적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도시 시민 혁명의 증가는 혁명의 '도시화'를 이끌었으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혁명 활동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혁명은 폭력성과 파괴성은 줄었지만, 그 영향력은 더욱 광범위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났다.
혁명의 발생 원인에 대한 학계의 오랜 논쟁은 혁명을 구조적 압력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는 '결정론'과, 예측 불가능한 우연에 의해 촉발되는 '불확정론' 사이에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도시 시민 혁명은 이 두 이론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 시민 혁명은 특정 구조적 취약성을 가진 정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발생과 전개는 정권과 야권의 상호작용과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태풍'과 같은 복합적인 현상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유리한 구조적 조건과 함께 정권과 야권의 의도적인 행동이 결합되어야 한다.
도시 시민 혁명의 발생 위험 예측
도시 시민 혁명은 사회 혁명이나 군사 쿠데타와는 다른 특정한 구조적 조건과 연관성이 높다. 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혁명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확률적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이 모델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통해 혁명의 발생 가능성을 측정한다.
정권의 성격: 도시 시민 혁명은 독재 정권, 특히 군사 독재나 개인주의적 독재 체제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정권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패를 심화시켜 시민들의 불만을 극대화한다. 반면, 사회 혁명은 정권의 성격보다는 사회 계급 관계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지도자의 장기 집권: 지도자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수록 혁명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장기 집권은 부패와 권력 남용을 심화시켜 시민들의 분노를 키우는 주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23년 재임)이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30년 재임)처럼 장기 집권한 독재자들이 혁명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적 요인: 사회 혁명은 주로 빈곤과 저개발 국가에서 경제 침체기에 발생했다. 그러나 도시 시민 혁명은 중간 소득 국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경제 성장률과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이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만연한 부패와 정치적 억압에 대한 도시 중산층의 불만이 혁명의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부패 수준: 정부의 부패가 심각할수록 혁명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V-Dem 부패 지수에 따르면, 도시 시민 혁명이 발생한 국가들은 다른 유형의 혁명이 발생한 국가들보다 부패 수준이 현저히 높았다.
국제 환경: 냉전 이후의 단일 강대국 체제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국제적 환경은 도시 시민 혁명이 확산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델은 도시 시민 혁명이 실제로 발생한 사례의 84%에서 높은 발생 위험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는 혁명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적 조건과 명확한 연관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구조와 우연의 상호작용
그러나 혁명은 구조적 조건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다. 멕시코(1985~1994년)와 말레이시아(1992~2002년)는 혁명 발생 위험이 높았지만, 정권의 능숙한 대응과 야권의 분열로 인해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2013년)처럼 예측 위험도가 낮았음에도 정부의 오판과 무자비한 대응이 결합되면서 혁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혁명의 발생이 구조적 조건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정권과 야권의 상호작용, 즉 우연성과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시 혁명은 빠르고 강렬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속성은 정권과 야권 모두에게 오판과 실수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인다. 농촌 혁명에서는 실수로부터 회복할 시간이 있었지만, 도시 혁명에서는 오판의 결과가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혁명은 구조적 조건에 의해 가능성이 형성되지만, 그 발생과 성공 여부는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혁명 세력이 정권을 전복시킬 가능성은 꾸준히 높아졌다. 1900년대 초에는 25%에 불과했던 성공률이 냉전 종식 이후에는 46%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성공률 증가는 혁명의 중심지가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고, 비폭력적인 '도시 시민 혁명'이 확산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시 혁명은 농촌 혁명에 비해 성공률이 훨씬 높았는데, 이는 혁명 세력이 도시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해 '탄압과 교란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조절했기 때문이다.
혁명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정권의 특성
정권이 혁명적 도전에 얼마나 취약한지는 혁명의 성격과 위치에 따라 다르다. 도시 혁명은 독재 정권, 특히 하이브리드(권위주의적이지만 선거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정권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정권은 독재적 통제를 유지하려는 경향과 대규모 시위를 완전히 무력화하기 어려운 정치적 제약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혁명 시도는 매우 드물었고 성공률도 낮았다.
지도자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수록 혁명 위협에 더 취약해졌다. 이는 장기 집권이 부패와 개인주의적 통치를 강화하여 정권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석유와 같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정권은 혁명적 도전에 맞서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능력이 뛰어나 혁명을 진압할 가능성이 높았다.
혁명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야권의 특성
야권의 전술과 조직 방식도 혁명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규모의 힘: 혁명의 성공은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의 규모와 직결되었다. 대규모 시위는 정권에 대한 압력을 높이고, 탄압에 대한 저항력을 키운다. 특히 도시 혁명에서 1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시위는 성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폭력 사용: 도시 혁명에서는 폭력적인 방법보다 비무장 시위가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도시에서는 정부의 압도적인 무력을 이기기 어렵고, 폭력은 오히려 정권의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고 시위 참여자의 규모를 줄이는 역효과를 낳았다. 반면, 농촌 혁명에서는 무력 투쟁이 성공의 필수 요소였다.
전술적 효율성: 도시 시민 혁명은 대규모 인원을 도시 중심 공간에 집중시키는 전술을 통해 성공률을 높였다. 이는 참여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정권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데 유리했다.
연합적 리더십: 도시 혁명은 다양한 정치 세력이 연합하여 지도부를 구성하는 '연합적 리더십'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리더십은 광범위한 지지층을 동원하고,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나 군부의 이탈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전술과 목표의 결합, 그리고 대규모 참여자 동원을 가능케 하는 조직적 역량은 도시 혁명의 성공을 이끌었다. 도시 혁명은 폭력과 파괴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정권을 교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의 발생과 성공에 구조적 조건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혁명의 결과가 늘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권과 야권의 의도적인 행동, 즉 '행위자의 선택'이 혁명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혁명의 역동적인 전개 과정, 특히 도시 혁명에서 발생하는 오판, 실수, 그리고 우연한 사건들은 혁명의 최종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혁명 게임과 예측 불가능성
혁명은 스포츠 경기와 유사한 '혁명 게임'으로 비유할 수 있다. 양측은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지만, 승패는 경기 당일의 선택과 대응에 따라 달라진다. 정권은 막대한 자원과 무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만, 혁명 세력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명 게임을 시작한다. 혁명은 정권이 게임을 피하고 싶어 할 때, 야권이 그 게임을 강요함으로써 시작된다.
혁명 게임의 전개 양상은 혁명의 공간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농촌 혁명: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농촌 혁명은 산발적인 전투와 긴 대기 시간을 특징으로 하며, 정권과 야권 모두 실수로부터 회복할 여유가 있었다.
도시 혁명: 도시 혁명은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 상태에서 전개된다. 권력 중심에 대한 근접성 때문에 정권과 야권 모두에게 높은 위험이 따르며, 혁명은 수일에서 수주 안에 결판이 난다.
이처럼 도시 혁명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므로, 정권과 야권은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압박감은 오판과 실수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며, 단 한 번의 오판이 혁명의 향방을 결정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기도 한다.
도시 혁명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
도시 혁명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혁명에 대한 참여자의 수는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오렌지 혁명이나 이집트 혁명에서 혁명 지도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시위에 참여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정권의 오판과 실수가 혁명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명령했으나, 군인들의 거부와 이탈이 혁명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정권의 대응 방식 역시 혁명의 흐름을 바꾼다. 정권은 혁명적 도전이 무력하고 작아 보일 때 무시하거나, 과도한 탄압을 가해 시위대를 자극하거나, 혹은 양보를 통해 시위대를 회유하려 한다. 그러나 도시 혁명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은 시위대를 무시하고 진압하려 했으나, 오히려 시위대의 분노를 키웠다. 양보를 하려 해도, 그것이 정권의 약점으로 비치거나 야권의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도시 혁명의 결과는 정권과 야권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군대나 경찰 등 하위 조직 구성원들의 즉흥적인 행동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 혁명' 당시, 마르코스 정권에 충성하던 군인들은 비무장 시위대가 인간 방패를 형성하자 발포를 주저했고, 결국 반란군 측으로 이탈했다. 이러한 '친밀화(fraternization)'는 시위대와 군인들 사이에 예상치 못한 유대감을 형성해 정권의 무력 진압을 실패로 이끌었다.
도시 혁명은 그 빠르고 강렬한 특성 때문에 정권과 야권 모두에게 엄청난 불확실성과 혼란을 안겨준다. 농촌 혁명과 달리 실수로부터 회복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결정적일 수 있다. 혁명은 구조적 조건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 그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혁명에서 공공 공간은 혁명의 전개와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혁명 세력은 도시의 공공 공간을 점거하고, 정권은 이를 통제하려 하면서 혁명은 '공간을 둘러싼 투쟁'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공간적 역학 관계는 농촌 혁명과 도시 혁명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농촌 혁명에서는 반란군이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영토에 대안적 권력을 선포하는 반면, 도시 혁명에서는 권력의 상징이자 통치의 중심인 공공 공간을 점거하는 것이 주요 전술이다.
공공 공간의 재정의와 혁명적 잠재력
도심의 공공 공간은 원래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통치 이념을 시민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조성된 장소였다. 예를 들어, 키이우의 독립 광장은 소비에트 정권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혁명 세력은 이러한 공간을 정권에 대한 저항의 장으로 전유함으로써 그 의미를 재정의한다. 대규모 군중이 광장이나 거리를 점거함으로써 정권의 비합법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정치적 주권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시 시민 혁명에서 공공 공간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혁명가들은 무장 봉기 대신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 공공 공간을 점거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가시성(Visibility): 광장 점거는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아 혁명의 규모와 정권의 취약성을 전 세계에 알린다. 이는 정권이 무력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도덕적 충격'을 유발한다.
상징성(Symbolism): 역사적 또는 정치적 의미가 있는 공간(예: 독립 광장, 천안문 광장)을 점거함으로써 혁명은 정당성을 얻고, 대규모 동원을 위한 구심점을 확보한다.
교란(Disruption): 도시의 중심 공간은 교통, 통신, 행정의 핵심 거점이다. 이곳을 점거함으로써 혁명 세력은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정권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한다.
공공 공간의 형태와 위치 역시 혁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 광장과 같은 넓은 공간은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기에 유리하며, 정부 청사나 대통령궁과 가까울수록 정권에 대한 압력은 더욱 커진다. 실제로, 성공한 도시 시민 혁명의 대다수는 권력 중심지로부터 1km 이내의 공공 공간에서 발생했다.
정권의 대응과 공간 통제 전략
혁명 세력의 공공 공간 점거에 맞서, 정권은 다양한 공간 통제 전략으로 혁명적 도전을 무력화하려 한다.
물리적 통제: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권력 중심지로의 접근을 차단한다.
공간 재설계: 프랑스의 오스만 남작이 파리 시가전을 막기 위해 좁은 골목을 넓은 대로로 바꾼 것처럼, 정권은 도시 공간을 재설계하여 혁명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마네시 광장처럼 시위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공간을 상업 지구로 바꾸어 정치적 의미를 지우려 하기도 한다.
법적 규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여 시위 가능 지역을 제한하거나, 시위 허가를 받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혁명 세력을 고립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도전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권이 통제하려는 공공 공간은 오히려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혁명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혁명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그들은 그토록 큰 위험을 감수하며 거리로 나서는 것일까? 도시 시민 혁명은 대규모 익명 군중을 동원하므로, 참여자의 배경과 동기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10년 튀니지 혁명, 2011년 이집트 혁명,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에 대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하여 혁명 참여자들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밝혀낸다.
혁명 참여자의 구성과 동기
이 네 가지 혁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자들은 사회 전체 인구의 소수였으며, 혁명에 대한 지지와 반대, 그리고 무관심으로 사회가 다양하게 나뉘어 있었다. 참여자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성과 동기는 혁명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인구통계학적 특성: 네 혁명 모두 남성의 참여율이 여성보다 높았지만, 그 차이는 문화적 배경과 혁명 과정의 폭력성 정도에 따라 달랐다. 연령대별로는 청년층이 혁명의 주요 동력인 경우가 많았지만, 오렌지 혁명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10년 후 유로마이단 혁명에서 중장년층이 되어 다시 참여하는 등 '코호트 효과'도 나타났다. 또한, 모든 혁명에서 고학력 및 중산층 참여자의 비율이 사회 평균보다 높았다.
혁명의 동기: 참여자들은 정권의 부패,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시민적 자유 억압 등 다양한 이유로 혁명에 참여했다. 특히 튀니지 혁명과 이집트 혁명의 경우, 참여자들은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자유보다는 경제 문제와 정권 부패를 가장 중요한 참여 이유로 꼽았다. 이러한 결과는 도시 시민 혁명이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라기보다는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분열된 연합과 새로운 연결 방식
도시 시민 혁명은 참여자들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통합하기보다는, 정권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다양한 집단을 결집하는 '부정적 연합'의 성격을 띤다. 설문조사 결과, 혁명 참여자들은 공공 정책에 대한 의견이 매우 다양했으며, 정치적 성향도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러한 분열은 혁명 조직이 참가자들을 이념적으로 통합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도시 시민 혁명은 전통적인 사회 조직의 약점을 디지털 기술로 보완하며 대규모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시기에는 텔레비전이 주요 정보 전달 매체였지만, 2010년 이후의 혁명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은 강력한 조직 없이도 대규모 군중을 빠르게 결집하는 '군중 기반 연결 행동'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미디어는 혁명 참여자들을 조직적으로 연결하는 것을 넘어, 참여자 개인의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가족, 친구)를 통한 동원을 촉진했다. 이는 참여자가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관계망과 함께 혁명에 참여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기반의 동원은 양면적인 결과를 낳았다. 혁명 초기의 급속한 동원에는 유리했지만, 혁명 이후 통일된 정치적 조직을 구축하고 전략적 목표를 조율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혁명 참여자들의 다양성은 혁명 이후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정권의 취약성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과거 혁명은 대규모 폭력과 사망자를 동반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혁명에서 발생하는 사망자 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 이러한 '혁명의 평화화'는 혁명의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와 맞물려 혁명의 성격이 변했음을 시사한다. 이 평화화 현상은 혁명적 내전의 발생 빈도와 치명성이 감소한 것, 그리고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혁명에서의 폭력 수준이 줄어든 것에 주로 기인한다.
혁명적 내전의 변화와 사망자 감소
혁명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는 것은 내전이다. 20세기 중반의 사회 혁명 시기에는 멕시코, 러시아, 중국, 알제리 등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혁명적 내전의 치명성은 크게 감소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지정학적 변화: 냉전 시기에는 초강대국들이 내전의 양측에 무기와 지원을 제공하며 갈등을 장기화시켰다. 그러나 냉전 이후 이러한 외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내전의 기간이 단축되고 사망자 수도 감소했다.
도시화의 영향: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권력, 부가 도시에 집중되었다. 이는 정권이 내전이 일어난 사회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내전을 조기에 종식시킬 필요성을 높였다. 또한, 도시 지역의 높은 가시성으로 인해 정권의 폭력적인 진압이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기 쉬워져 내전의 치명성을 낮추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혁명의 도시화는 혁명적 내전의 발생 자체를 줄였다. 혁명 세력이 압도적인 국가의 무력이 집중된 도시에서 내전을 벌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혁명 세력은 무력 투쟁 대신 다른 전술을 선택하게 되었다.
통제된 혁명에서의 폭력 감소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혁명, 즉 '통제된 혁명'에서도 폭력의 수준은 꾸준히 감소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군대가 비무장 시위대에 대해 무력 진압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권은 비무장 군중에 대한 무력 사용이 가져올 정치적 부담과 군대 내 동요를 우려하게 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전술과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최소 무력 원칙: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최소 무력 원칙'은 20세기 들어 국제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경찰이나 군대가 시위 진압 시 필요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대규모 살상을 피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비살상 무기 기술의 발전: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 방패와 같은 비살상 무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권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통제하면서도 사망자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확산은 혁명 참여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크게 줄였다.
이러한 변화는 혁명이 도시로 돌아오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도시의 높은 가시성과 언론 및 국제 사회의 감시는 정권이 무력 진압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혁명은 과거보다 덜 파괴적이고 덜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으며, 이는 혁명이 현대 정치의 더 일반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혁명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후에도, 그 목표했던 변화를 완전히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혁명 이후의 정부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재건하고, 경제를 안정시키며, 새로운 정치 제도를 수립하는 등 수많은 난관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혁명이 초래한 결과는 혁명의 유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은 '사회 혁명'과 '도시 시민 혁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치 질서, 경제 성장, 불평등, 정치적 자유, 그리고 정부의 책임성이라는 다섯 가지 측면에서 비교 분석한다.
혁명의 유형에 따른 정치 질서의 변화
혁명 이후의 정치적 안정성은 혁명의 유형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사회 혁명을 통해 집권한 정권은 평균 28.9년간 권력을 유지하며 매우 안정적이었다. 이는 혁명적 투쟁의 기간이 길고 폭력적일수록 새로운 정권이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고 반대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도시 시민 혁명을 통해 집권한 정권은 평균 11.9년밖에 유지되지 못하며 매우 취약했다. 이는 도시 시민 혁명이 단기간에 다양한 세력의 연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혁명 이후 이들의 결속력이 약해져 정권이 쉽게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국가의 역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 혁명은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새로운 군대와 정부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국가의 통치 역량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도시 시민 혁명은 이전 정권의 국가 기구를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에, 혁명 이후에도 국가의 통치 역량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혁명과 경제의 관계
혁명은 대체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혁명의 유형에 따라 그 영향의 방식과 정도는 달랐다.
사회 혁명: 사회 혁명은 내전의 파괴성과 함께 사유 재산 몰수와 같은 급진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여 혁명 직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경제 정책을 통해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는 경향도 보였다.
도시 시민 혁명: 도시 시민 혁명은 내전과 같은 대규모 파괴가 적어 혁명 직후 경제적 타격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은 분열과 부패에 시달리며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혁명 이후 수년간 경제 성장이 정체되어 사회의 불만은 다시 커졌다.
혁명과 불평등, 자유, 책임성의 관계
혁명은 사회적 불평등과 자유, 책임성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불평등: 사회 혁명은 계급과 관련된 불평등(토지 소유, 소득 등)을 크게 감소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은 종종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가로 얻어졌다. 도시 시민 혁명은 교육, 보건과 같은 공공재 접근성의 평등을 소폭 증진했지만,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자유와 책임성: 사회 혁명은 정치적 자유와 정부의 책임성을 크게 훼손하고, 심각한 정치적 살상을 초래했다. 반면, 도시 시민 혁명은 정치적 자유, 법치, 그리고 정부의 책임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들은 정권의 불안정성과 부패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퇴보하는 경향을 보였다.
혁명의 영향은 일률적이지 않다. 사회 혁명은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 평등을 증진했지만, 자유를 억압했다. 도시 시민 혁명은 자유와 책임성을 증진했지만, 불안정한 정권과 경제 문제, 그리고 불평등 심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혁명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그 영향은 혁명의 유형과 전개 방식에 따라 복잡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혁명에 대한 수많은 예측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이 책의 논의는 혁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돌아왔고, 그 결과 혁명의 형태, 빈도, 결과, 그리고 영향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혁명 또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 미래는 도시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시화와 혁명의 지속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그 비율이 7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권력, 부가 도시에 계속 집중되면서, 도시는 앞으로도 혁명의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도시 시민 혁명은 비무장 대규모 시위를 통해 권위주의 정권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는 혁명의 발생 빈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15년에서 2019년 사이에 발생한 혁명의 89%가 도시에서 일어났으며, 그중 63%가 도시 시민 혁명이었다. 이는 혁명이 여전히 현대 정치의 중요한 한 부분임을 보여준다.
도시 시민 혁명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하지만 도시 시민 혁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들어 혁명의 성공률이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정권들이 도시 시민 혁명에 대응하는 방식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정권들은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거나, 디지털 통신을 통제하여 혁명 세력을 무력화하려 한다. 이러한 정권의 학습은 도시 시민 혁명의 핵심 전술인 '숫자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한, 사회와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는 혁명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디지털 감시의 강화: 안면 인식 기술과 같은 첨단 감시 기술은 시위 참여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혁명 세력을 무력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는 혁명가들이 익명성을 통해 보호받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지정학적 변화: 냉전 이후 민주주의 확산을 지지했던 국제 질서가 흔들리면서,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동맹국들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도시 시민 혁명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불평등의 심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은 도시 빈민층과 소외된 계층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이는 미래 혁명에서 사회적, 경제적 요구가 더욱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혁명의 미래
혁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미래의 혁명은 더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거나, 우익 포퓰리즘 정치인들에 의해 도구화될 수도 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혁명적 도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혁명은 파괴와 고통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위한 희망을 제시한다. 혁명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혁명의 경험을 통해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