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의로운 민족: 한중관계 600년사

도덕적 자부심, 힘의 논리, 그 사이의 딜레마

by 소묘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냉전사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노르웨이 출신 역사학자다. 그의 저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600년이 넘는 한중 관계를 '제국'(empire)과 '의로운 민족'(righteous nation)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도 있게 고찰한다. 베스타는 한국이 왜 600년 동안 거대한 중국 제국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는지 탐구하며, 이를 통해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질문을 던진다. 첫째, 왜 북한의 행동은 중국의 예측과 통제를 벗어나는가? 둘째, 왜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남한의 입장과 다른 접근을 하는가? 셋째, 왜 한국인들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거로 시선을 돌린다. 명과 청 제국은 한반도를 정치적, 문화적 완충 지대로 활용하며 직접적인 병합 대신 복잡한 종속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은 '사대'를 통해 외교적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소중화'라는 자의식을 내세우며 문화적 자존심을 지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한반도는 스스로를 '의로운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는 외세의 위협 속에서 '의리'와 '정의'를 수호하는 민족적 정체성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오늘날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북한은 중국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주체' 사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성을 주장한다. 이는 과거 조선이 거대 제국에 종속되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역사적 패턴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북한에게 중국은 언제든 자신의 주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다.


또한 미중 경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냉전 시대의 유물, 즉 '핵 확산을 막아야 할 위협'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 균형'으로 인식한다. 중국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초래할 수 있는 난민 유입과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가장 두려워하며, 북한 정권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역사적 자부심과 지정학적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우리는 과거의 '의로운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지정학적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냉혹한지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 혹은 '중국'을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한반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길러준다. 이 책은 한국이 지정학적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함양하는 데 필수적인 지침서가 될 것이다.


1. 중국과 조선 시대: 한중 관계의 형성, 1392-1866


중국과 한국은 2,000년 이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이웃이다. 두 나라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통일과 분열의 시기를 겪어왔지만, 언어와 관습을 통해 각각의 문화적 정체성을 오래전부터 구축했다. 특히 유교와 불교가 전파되면서 한중 양국은 긴밀한 문화적 영역을 공유하게 된다. 중국 한자(한국에선 '한자')를 기반으로 한 공통의 문자 언어는 두 나라 엘리트 지식인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정치적으로는 중국이 제국으로 확장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긴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한국은 몽골 원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잠시 놓였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직접적인 정치적 통제 밖에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후반, 새로운 명 제국과 조선 왕조가 건국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크게 변모한다.


제국과 민족 그리고 의리


명 제국과 조선은 몽골 제국의 지배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명은 전통적 유교 규범과 문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중국은 이전 왕조인 원 제국의 잔재를 지우려 했지만, 실제로는 몽골식 전제 정치와 중앙 집권적 통치 방식을 일정 부분 계승했다. 명 제국은 자국을 '천하'의 중심, 즉 '모든 땅이 천자 아래에 있다'는 개념으로 인식하며, 주변 국가들이 복종해야 할 문명의 중심지로 여겼다. 조공 제도는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주변국과 관계를 맺는 주요한 방식이었다. 조공은 공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외교와 경제적 교류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조선은 유교적 이상을 사회와 국가 건설의 청사진으로 삼은 훨씬 더 의도적인 기획이었다. 조선은 유교의 원칙, 특히 '정의롭고 올바른 도리'를 뜻하는 '의'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유교 사상에서 '의(義)'는 지식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상황에 맞게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격한 유교적 규범을 적용하며 도덕적이고 질서 잡힌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국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명과 조선의 관계: 상호 의존과 단절의 시작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명 제국의 황제 홍무제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홍무제는 결국 조선의 건국을 인정했다. 조선의 통치자들은 명을 '큰 형님'으로 섬기는 '사대(事大)' 정책을 채택한다. 이는 명의 간섭을 막고 외교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실용적인 방법인 동시에, 조선이 유교 문명 세계의 중요한 일부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이념적인 의미도 내포했다.


이러한 관계는 정치적 종속에 그치지 않았다. 조선의 사절단은 명 제국에 조공 사절을 보내면서 무역과 지식 교류의 기회로 삼았다. 한편 명의 사신들은 조선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명과 조선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고, 명은 왜란이 자국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에 대규모 원군을 파병한다. 이 전쟁에서 조선은 국가가 무너지는 혼란을 겪었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스스로 나라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내부는 '진정한 문명'이자 '유교적 의리의 수호자'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17세기 초, 명 제국이 쇠퇴하고 북방의 새로운 세력인 후금(청 제국)이 부상하면서 상황은 다시 변했다. 조선은 '의리'를 지키며 명에 대한 충성심을 굳건히 하려 했지만, 청의 침략으로 인해 결국 군신 관계를 맺게 된다. 이 사건은 조선의 엘리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 즉 문명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는 사상을 낳았다.


19세기 중반까지 조선은 '실학' 사상이 등장하며 일부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서도 청 제국과 표면적으로는 종속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 진출하면서 오랜 기간 이어진 한중 관계의 전통적인 틀은 거대한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기 시작한다. 청 제국이 영국에 패배하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더 이상 문명의 중심이 아니며, 서구의 기술과 사상에 개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600년 가까이 이어진 한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2. 동아시아의 국제화: 중국, 한국, 그리고 세계, 1866-1992


19세기 중반, 증기선과 철도가 등장하며 세계는 급변했다.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내부 반란(태평천국 운동)으로 혼란에 빠졌으나, 조선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조선의 지도부는 외래 사상이 국내에 유입되거나 사회 질서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우려했고, 이는 서구 종교와 선교사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서양의 군사적 힘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최제우와 같은 종교 지도자는 '동학'을 창시하며 서학(西學)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사상을 제시했다.


변화의 물결을 막아선 쇄국 정책


1866년, 프랑스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조선에 침략했을 때, 섭정 흥선대원군은 단호한 저항을 택했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상륙했으나 조선군에 의해 격퇴당한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프랑스의 조약 요구를 청에 보냈을 때, 청의 외교 당국이 이를 직접 처리하지 않고 조선에 되돌려 보낸 사건은 조선 지도층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전통적인 한중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마침내 일본이 서양의 전술을 모방하여 운요호 사건(1875)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조선에 통상 조약을 강요하면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한다. 청은 조선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서구 열강과도 조약을 맺으라고 조언했고, 조선은 1880년대에 대부분의 주요 서구 국가와 통상 조약을 체결한다.


청일전쟁과 몰락하는 전통적 질서


조선의 개화 정책은 국내 보수 세력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는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청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발발하자 조선은 청에 군대 파병을 요청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도 군대를 파견하면서 양국은 한반도를 놓고 전쟁을 벌인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600년간 이어져 온 청-조선 간의 전통적인 관계는 완전히 붕괴했다.


전쟁 후 조선은 주권을 회복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일본의 노골적인 간섭과 지배를 받게 된다. 청의 관리들은 한반도의 운명을 보며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옛 격언을 되새겼다. 대한제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등 다른 열강의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1904~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 마침내 1910년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다.


망명하는 민족주의와 새로운 한중 관계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해외로 망명했다. 특히 중국 상하이와 만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중국 국민당의 지도자 쑨원과 같은 중국 민족주의자들은 한국 독립운동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한국을 과거 제국의 '조공국'으로 간주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1930년대 중반,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자 중국 공산당과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했다. 이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군에 대항했다. 이 시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일성 또한 중국 공산당과 소련과 연대했다. 1940년 김일성은 소련으로 건너가 소련군 장교로 복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내전에 돌입한다. 한편 소련은 1945년 만주로 진격하며 한반도의 38선 이북을 점령했고, 미국도 남한에 군대를 파견하며 한반도는 분단된다. 미국은 이승만을, 소련은 김일성을 각각의 통치자로 내세웠고, 두 지도자는 외세를 등에 업고 무력 통일을 주장했다.


한국 전쟁과 냉전 시대의 새로운 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 전쟁이 발발한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북한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북한을 '어린 동생'이라 칭하며 수십만 명의 군대를 파병한다. 이 전쟁으로 중국은 80만 명의 군사적 손실을 입었으며, 한반도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한국 전쟁은 한중 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에 군사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남한은 미국에 의존하게 된다. 북한의 김일성은 중소 분열을 이용하여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독재 체제를 공고히 했다. 반면 남한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 아래 경제 기적을 이뤄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를 달성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1980년대부터 남한 기업들과의 비공식적인 경제 교류가 급증했다. 1990년대 초 남한은 소련에 이어 중국과도 국교를 정상화했고, 이 과정은 북한에게 큰 충격과 고립감을 안겨줬다. 이로써 20세기는 한국에게 가혹한 시기였으며, 오랜 역사적 관계를 공유했던 한중 관계는 근본적으로 재편되었다.



3. 오늘의 중국과 한국


20세기 후반, 중국과 한국은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중국은 정치적 캠페인에 몰두하던 폐쇄적 사회에서 시장 지향적인 사회로 탈바꿈했고,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반면 북한은 고립되어 경제적으로 취약해졌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대규모 기근까지 겪었다.


북한의 고립과 핵 개발


김일성 사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외교적 카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합의는 미국과 북한의 불신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감행하며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샀지만, 북한은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미국의 핵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한류


남한은 냉전 종식과 중국의 개방 덕분에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한국 제품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중심으로 한 '한류'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수많은 젊은 중국인들이 한국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열광했다. 이는 양국 간의 교류를 촉진했지만, 중국 정부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통제를 시도하며 문화적 위협을 느꼈다.


미사일 방어 체계와 외교적 긴장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더욱 거세졌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남한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했다. 이에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며 한국 기업에 대한 비공식적인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는 남한 국민들의 반중 정서를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김정은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도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역사가 주는 교훈


중국과 한국은 600년간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은 독립된 주권을 지키면서도 중국의 제국적 질서를 수용하는 '복합적 주권'을 유지했다. 조선은 자신을 문명 수호의 보루인 '소중화'로 여기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며 서구의 민족주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이러한 관계는 근본적으로 재편되었다. 중국은 모든 민족을 포용하는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국을 '국가'로 재정의하려 했고,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굳혔다.


오늘날 중국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전통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북한을 자신을 위한 완충 지대로 여기고 있다. 반면 남한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가 한반도 통일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양국은 경제적으로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북한 문제와 외교적 입장 차이로 인해 정치적 신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중국은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 남한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한반도 문제가 남북한 관계를 넘어,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복합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종합 시사점


이 책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소개문에서 언급된 내용(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미중 관계에서의 한국 위치, 대중국 불신 등)을 넘어서, 이 책은 세 가지 근본적인 시사점을 제시한다.


1) '의로운 민족‘의 자의식이 야기하는 현실의 딜레마


한국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의로운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굳혔다. 이는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민족적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자의식이 현실에서 '패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청의 침략에 맞서 '의리'를 지키려 했으나, 결국 굴욕적인 항복을 맞이했다. 또한 구한말 대한제국은 '자주'를 외쳤지만, 근대화된 일본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국권을 상실했다.


'의로움'이라는 정신적 가치가 현실의 힘(power)과 상충할 때, 외교적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책은 한국이 외세의 압력에 맞서 '의로움'을 내세울 때마다 위기를 겪었음을 반복적으로 지적한다. 북한 역시 '주체'라는 이념을 통해 독자성을 과시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에서 고립과 경제적 파탄을 초래했다. 이처럼 민족적 자부심이 현실의 냉혹한 힘의 논리를 외면하는 순간,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본질적 정책


중국은 표면적으로 북한을 '혈맹'이라 칭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전략적 안정에 기반한 선택이다. 책에 따르면, 중국은 과거 제국 시절부터 한반도를 '완충 지대'로 활용하려 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에게 기회인 동시에 가장 큰 위협이다. 붕괴 시의 난민 유입과 미국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통일을 도울 이유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현상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만큼만 지원하고, 남한과의 관계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에서 관리한다. 이 책은 한국이 '중국이 통일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조언한다. 중국에게 한반도의 '미래'는 한반도 전체가 안정된 '완충 지대'로 남는 것이며, 이는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3) 한반도 문제를 넘어서는 중국의 외교 전략


한반도는 한국과 중국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다른 주변국에 대한 외교 전략의 시금석이다.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중국 외교 전문가의 말처럼, "만약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동맹국인 이웃 나라로부터 무시당하는 상황을 용인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중국을 존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 태도가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주변국들에게 중국의 진정한 힘과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혈맹'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하는 중국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중국의 복잡한 외교적 딜레마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곧 미래 세계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모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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