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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r 28. 2022

붕괴한 믿음, 방황

광인일기 서평


 굳게 믿고 있던 가치가 틀렸다고 깨닫기는 매우 어렵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그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기에 그렇다. 살아온 세월에 있는데, 자신이 여태 우선시했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행위는 여간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개인의 소소한 가치도 이렇게 깨뜨리기 어려운데, 만약 사화적 통념에 가까운 주류 인식이라면 난도는 더욱 올라간다. 시대에 맞선 인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훗날일 것이며 보통 당대에서는 그야말로 광인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루쉰의 단편소설 '광인일기'(이하 본작)는 중국 문학혁명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본작의 핵심은 간단명료하다. 당시 주류 사상이었던 봉건제도와 유교도덕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상인 과학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러한 내용을 식인, 광인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작은 '모군 형제' 중 동생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나'는 피해망상증에 걸렸다가 치유된 상태이며, 본작은 피해망상증 증상이 있던 때 쓴 일기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나도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나'는 주변인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산다. 자신의 큰 형마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사냥 당할 수 있다는 감각은 인간을 근본적인 부분부터 공포로 물들인다. '나'가 느끼는 식인은 독자가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인간을 포기한 자들의 야만스러운 행위 따위로 치부할 수 있다. 이에 '나'는 동화되는 것조차 격렬하게 반대한다.


 몇 젓가락 집어먹고 나자 미끈거리는 맛이 생선인지 사람 고기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식사 도중 집어먹은 생선찜의 맛이 수상했다. 식인하는 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식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일종의 불신에서 시작된 의심일 수 있다. 전부 게워낸 '나'는 점점 지쳐갔다.   


 알겠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부모들이 시킨 것이다.


 이런 역겨운 행태는 비단 주변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4000년 역사 내내 지속된 유구한 전통이었다. '나'는 더 미쳐갔다. '나' 입장에서는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것이 미개했다. 배고프다고 식인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식인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용납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지는 결국 파멸을 몰고 왔다. 4000년 동안 식인을 해온 역사 안에서 '나'는 자신도 식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아무리 피해왔다고 해도 몰래 반찬에 섞어 놨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절망한다.


 아직도 사람 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나'는 후대에 과제를 넘긴다. 그러고 나서 이 피해망상증은 치유되었다고 나온다. 이제 '나'는 그토록 힐난했던 그 삶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애초에 몰랐던 그 시절로 회귀한 것을 작중에서 치유라고 했다. 사실 치유보다는 타협이 알맞은 이해일 것이다. 시대를 바꾸지 못한 한 개인의 현실적인 행보이자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본작의 '나'는 본인 의지로 광인의 길을 걸었다. 고립된 환경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도 돌아오는 것은 한심한 눈초리였을 것이다. 광인이 되고자 했던 용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요새 수많은 사상과 가치가 난립하고 있다. 그 중 새롭게 두각을 나타난 것도 있고 이미 사장되었다가 다시 고개를 든 것도 있다. 각자 목소리를 내며 나름 타당한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에게는 아직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예를 들면,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사람이 많아져도 아직 일부에서는 전과 다름 없이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모두 사정이 다르니 일방적인 비난을 할 수는 없지만 시대적인 요청을 묵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제는 다수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문제는 마찰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요즘 대두되는 채식, 일부 동물에 한하는 보호 의식, 다양한 성 정체성 등은 논란이 많다. 혹자는 그런 입장을 극심히 비난하기도 한다. 자신과 달라서, 현시대에 맞지 않는 비주류라서, 그들이 틀리고 자신이 맞다고 견지하는 태도는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본작을 읽어보면 약간 변할 수도 있다. 스스로 광인의 길을 걸어간 자의 용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인, 식인이라는 단어는 너무 자극적일 수도 있고 당시 인의예지로 대표되는 중국 유교문화, 봉건제도와 같은 선상에 두기에 너무 격이 다른 것 아닌가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왜 이런 비유를 썼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정도로 나쁘다는 것인지, 그것을 틀렸다고 말한 사람이 그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보였기에 그런 것인지는 홀로 판단해 봐야 한다.


 믿고 있던 가치가 붕괴한다면 누구나 방황할 수밖에 없다. 본작의 '나'처럼 타협해도 된다. 허나 그 가치가 붕괴할 만큼 새로운 이상을 발견했다면 한 번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봤다. 물론 언제나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예출판사

작가 : 루쉰

옮긴이 : 정석원


-참고 자료


최근배 / 원종은, 광인일기(狂人日記) 텍스트 구조의 변증법적 분석 ― 정반합(正反合)을 중심으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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