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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Apr 07. 2022

비로소 보이는 것

시골 의사 서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 작품이 친절하지만은 않다. 읽고 나서 사건 흐름조차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난해한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다시 읽어 겨우겨우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내도, 내재된 주제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류의 소설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린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좋아할 수도 있고,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듯한 피로감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다. 취향 문제로 치부할 수 있으나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싶은 의견이 하나 있다. 문학 작품에 정답은 없다고 믿고 있는 편인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앞서 말한 후자의 태도는 분명 모순이다. 애초에 없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렇다.

 물론 오래 연구된 고전 중 정설적인 해석이 자리잡힌 작품도 굉장히 많다. 또, 동시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공인된 해설이 없는 문학 작품을 향유하기 위한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고 감상한 대로 풀어나가면 된다. 이 방법은 사실 모든 문학 작품에 해당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시골 의사'(이하 본작)는 다소 어려운 작품이다. 사건이 개연성 있게 흘러가지 않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파편처럼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짜 맞추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일부 장면에 대해 본인의 입맛을 곁들인 해석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본작 속 주인공은 시골에 있는 의사다. 어느 날, 꽤 먼 거리에 중환자가 있어 급히 떠나야 하는데 말이 죽어 떠날 방도가 없었다. 그때 늘 집에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창고를 열자 낯선 이가 나타난다. 그는 마부였고 '나'에게 말을 빌려준다. 마부가 말을 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은 '나'의 하녀인 '로자'였다. '나'는 거부하지만 마부는 무시하고 말들을 출발시킨다. 순식간에 '나'는 중환자가 있는 집 앞에 도착하고 만다. 그전까지 '로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로자'를 마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나'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도착해서 중환자인 청년의 상태를 봤다. 처음에는 '로자'의 희생에 관해 생각하느라 아무런 증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꾀병이라 판단하고 어서 떠날 채비를 다 했는데, 뒤늦게 청년의 오른편 허리 언저리에 손바닥만 한 상처를 발견한다. 이미 구더기가 끓고 있을 정도로 손쓰긴 어려운 상태였다. 청년은 '나'에게 살려달라고 한다.


 내가 담당한 구역의 사람들은 이 꼴이다. 언제나 불가능한 일들을 의사에게서 바라는 것이다.


 이에 '나'는 청년에게 거짓말을 한다.


 "(...) 자네의 상처는 그다지 위독하진 않다네. 도끼를 두 번 예각으로 찍어나 만들어진 상처일 뿐일세. (...)"


'나'는 청년을 두고 떠난다. 말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려고 하니 이상하게도 길을 잃고 만다. 올 때는 순식간에 길을 찾아온 말은 되돌아 갈 방법을 잊은 듯했다.


 결코 나는 이 모양으론 집에 갈 수가 없다.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


 '나'와 말은 허허벌판에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본작을 읽고 '의미'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않아도 그것들은 말 그대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도 없이 그저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 어떤 것,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감히 그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놀랍게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몰랐지만 언제부턴가 창고에 있던 마부, 마부에게 빼앗기고 나서야 되새겨진 '로자' 그리고 청년의 상처 모두 상술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방치되어 있던 존재가 의미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논리의 비약일까?


 존재에서 의미로 바뀌면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어떤 사람들의 감정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사업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카페에서 처음 듣고 꽂혀 플레이 리스트에 넣은 어떤 노래일 수도 있다. 의미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치를 통해 높고 낮음을 판가름한다. 인지는 가치를 낳고, 우리는 가치 속에서 살아간다. 본작은 그 가치가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의미는 사라지기도 했다. 의사는 명백한 거짓말을 뱉었다. 그렇게 자신의 직업윤리를 저버렸을 때, 의사의 의미는 추락했다. 산산히 부숴져 버리고 말았다. '나'가 되돌아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이유는 현시대에서 의미의 상실이 뜻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가치가 붕괴한 것이다.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으니, 반대로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본 서평은 허황된 주장일 수 있다. 허나 독서란 사유를 위한 수단이 됐을 때 의미가 빛을 발한다 말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본 서평이야 말로 진정한 독서가 가깝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틀렸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주장을 펼쳐 나가는 것은 옳다. 물론 오류를 자각했을 때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투르지만 의미를 찾아 나간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예출판사

작가 : 프란츠 카프카

옮긴이 : 이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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