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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Apr 11. 2022

운명의 개척자

오이디푸스 왕 서평


 그리스 3대 비극으로도 불리는 '오이디푸스 왕'(이하 본작)은 기원전 5세기경에 발표된 희곡이다. 20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읽히는 명작이며, 관련 전공자들에게는 필독서 수준이다. 본작을 평가할 때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고,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 부족함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본작은 굉장히 치밀하게 짜인 구성이 매력적인 글이다. 일종의 추리 소설을 보는 느낌으로 다가가다 점점 비극적인 반전이 진실로 다가올 때 느껴지는 감정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결국 카타르시스에 이르지만 썩 유쾌하진 않을 수 있다. 비극적인 결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작은 단순히 오이디푸스 왕의 파멸을 그린 작품이 아니란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본작은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인간상을 성공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오이디푸스 : 옳은 말이다. 허나 신들께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건 인간의 모든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요즘 나라에 역병이 돌고 상태가 좋지 않자 신께 이유를 묻는다. 신은 나라에 지독한 범죄자가 있으니 그를 처단하라 한다, 그 범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해 자식을 낳은 것이다. 


 테이레시아스 : 왕께서 뱉은 말 때문에 왕 스스로 파멸할 것임을 제가 압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범인을 찾기 위해 예언자를 부른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진실을 알게 되면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테이레시아스'에게 크게 화를 내지만, '테이레시아스'는 본인을 부른 것마저 '오이디푸스 왕'이 자처한 것 아니냐 꾸짖는다. 


 테이레시아스 : 부르시지 않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파렴치한 범죄자는 자신이 맞았다. 친부모에게 어렸을 적 버려졌었다. 그래서 옛날 길을 막던 마차 일행을 모두 죽였을 때, 그중 하나가 자신의 친아버지인 것을 몰랐고, 훗날 왕이 되어 왕비를 취할 때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 것을 몰랐다. 끔찍한 비극이 현실로 다가올 때, '오이디푸스 왕'은 순응하지 않았다. 


 왕께서 왕비의 드레스에 달린 금 브로치를 뜯어 그 날카로운 끝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며, (...) 울부짖으셨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진실을 마주했을 때, 이 결과의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단 사실을 시인했다.  


오이디푸스 : (...) 하지만 내 눈을 찌른 손은, 아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이었다네. (...)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는 선택을 한 것도 참으로 인간다운 징벌이다. 만약 고통에 못 이겨 목숨을 끊었다면, 그것은 곧 신으로의 회귀에 가까울 것이고, 인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해 신의 도움을 받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남의 손에 의해 처벌받는 것도 아닌 자신에게 직접 벌을 내리는 것도 어찌 보면 신의 권한을 직접 행한다고 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행동이 아니었다면, 본작도 결국 운명을 따라가는 나약한 인간을 표현한, 신에 의해 살아가는 개인을 묘사한 작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런 평가를 받지 않는 이유는 지독한 비극 속 굴하지 않는 인간을 훌륭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운명론을 믿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믿는 태도는 심신의 안정을 줄 수는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삶의 동기를 앗아갈 수도 있다. 정해져 있으니 노력의 당위성도 잃을 수 있고 포기해도 어차피 정해진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안일함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험하다. 우리는 우리 삶의 개척자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단 한 번이고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우리 몰래 높으신 신께서 신탁을 내려놨다 하더라도 '오이디푸스 왕'처럼 개척해 나가야 한다. 벌을 주더라도 직접 줘라. 벌을 받을 행동을 했다면, 어떤 상황이었든 결국 자신이 직접 한 행동이니까 말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별글 

작가 : 소포클레스 

옮긴이 :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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