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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Feb 21. 2022

인간이 되고 싶은 인간

인간실격 서평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 어느 정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교육 등 여러 가지가 그 생각에 포함됐다. 하지만 언제나 1순위로 꼽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으나 사람이라 단언하고 싶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깊이 동감하기도 하고 '나'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타인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 더 그렇다. 세상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나'는 다른 '나'들의 동의 및 합의 덕에 존재한다고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즉, 타인 없어 오롯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이하 본작)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 결여된 '오바 요조'가 주인공이다. '오바 요조'는 타인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오바 요조'는 본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지 못하고 자그마한 실수도 큰 화로 돌아올까 전전긍긍한다. 짧고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지만 아마 어렸을 때 받았던 성적 학대가 이러한 성격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예상된다. 이런 성격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시작한 것을 '오바 요조'는 광대짓이라 명명했다. 광대짓은 '오바 요조'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이자 방어기제이다. '오바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보기에 나이에 맞는 행동을 억지로 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그가 세간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을 때, '오바 요조'는 스스로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다는 고백을 통해 그의 광대짓에 대한 후회를 시사한다.


 저는 그 백치나 미친 사람 같은 매춘부들에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목격한 밤도 있었습니다.


 사람 한 명이 지독하게 몰락하는 과정. 본작의 줄거리는 앞서 말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 요조'의 몰락은 상술했던 어렸을 적 성적 학대. 즉, 잘못된 여성 인식으로부터 시작했을 수 있다. 그 이후 차례대로 고등학생 시절 드나들던 매춘소굴,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여자와 했던 동반자살의 실패, 미망인과의 동거 및 가출, 부인이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한 일, 마약 중독에 빠져 약국 부인과 밀회를 한 것 등. '오바 요조'의 삶은 마지막에 되돌아봤을 때 잘못된 여성 인식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그 중 '오바 요조'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여성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했던 담배가게 아가씨 '요시코'였을 것이다. '요시코'는 처음으로 '오바 요조'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오바 요조'는 처음으로 '요시코'에게 타인을 향한 때 묻지 않은 맹목적인 순백의 믿음을 봤기 때문이다. '오바요조'는 '요시코'에게 술을 끊겠다고 말한 다음 날 바로 대낮부터 술에 취했다. '요시코'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요시코'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과 손가락까지 걸고 한 약속을 절대 어길 리 없다는 순수한 신뢰에서 비롯된 불신이었다.


 "저를 진정으로 믿어주는 이 어린 신부의 말을 듣고, 몸짓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서 어쩌면 나도 이제 점점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일렁이던 행복은 순식간에 뒤집어져 비참한 불행이 되었다. 남을 너무 잘 믿는 '요시코'는 이내 '오바 요조'의 일로 집에 드나들던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만다. 이때 '오바 요조'는 절망했다.


 과연 때 묻지 않은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


 인간에 가까워졌던 '오바 요조'는 급속도로 인간이라는 종 분류에서 멀어졌다. 유일한 희망이 더럽혀졌고 신뢰와 무저항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눈썹도 평범하고 눈도 평범하고 (...) 이 얼굴에는 표정만 없는 게 아니라 인상이라는 것 자체가 없구나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동아줄이 끊어진 그 무렵 '오바 요조'는 보통 사람이 갖는 인상마저 잃었다.


 '오바 요조'에게는 '호리키 마사오'라는 친구가 있었다. '호리키 마사오'는 '오바 요조'에게 처음으로 술, 담배, 매춘, 좌익 사상 따위를 알려준 장본인이다. 사실 이런 것보다 중요한 부분은 '호리키 마사오'는 '오바 요조'가 처음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게 도움 아닌 도움을 주었다.


 "그나저나 네 여성 편력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는 세상이 용납 못 해"


(...) '네가 말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널 말하는 거 아니야?'


(...) 그때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철학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바 요조'는 세상이란 개인, 인간의 복수형, 개인의 집합 따위로 인식한다. 또, 개인과 개인의 싸움,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라고 말하며 어렴풋이 세상을 알기 시작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오바 요조'는 인간은 아닐지언정 세상의 일부였다. 세상은 곧 개인,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라는 인식으로 보면 '오바 요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바 요조' 자신에게 패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수기는 차분한 고백 같아 보이지만, 후회가 섞인 부끄러움 많은 생애에 관한 참회록 같이도 읽힌다.


 '오바 요조'는 인간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뒤에서 욕하고 앞에서는 웃고, 무례하고, 뻔한 마르크스 사상을 진리인 양 믿는 그런 인간을 '오바 요조'는 누구보다 동경했을 것이다. 자신의 결여를 인정하고 인간을 관찰하며 광대짓이라 치부한 행동을 갈고 닦은 것은 그런 감정에서 출발했을 수 있다. '오바 요조'가 '요시코'를 통해 희망을 느끼고 후에 좌절한 것도 모두 이러한 연유라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삶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다 할 수 있다. 신뢰와 무저항이 죄가 될 수 있음을 목격하고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 또한 요구된다. '오바 요조'의 불완전함은 사회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유약한 모습에서 발현한 것이지 특별한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으로 표현되는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함 자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임은 부정할 수는 없다.


-도서 정보


출판사 : (주)미르북컴퍼니

작가 : 다자이 오사무

옮긴이 :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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