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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Feb 21. 2022

거짓말은 못하는 거울

단편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쇼코의 미소 서평


 남은 '나'의 거울이다. 우리는 종종 본인의 모습을 타인에게 투영하여 바라보기도 한다. 극히 일부조차도 조각내어 다수에게서 발견한다. 남을 통해 바라보는 '나' 자체는 객관적이고 다소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어 자신이 처한 현실을 꾸밈 없이 보여준다. 우리는 남을 이해해야만 한다. '나'가 인식하는 남 자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는 16살 때나 23살 때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유 입장에서 봤을 때 해석은 달라진다.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표면에 드러난 미소 뒤에 가려진 희뿌연 모습을 보지 못했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그렇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쇼코는 짧은 기간 소유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같이 지내는 동안 소유는 쇼코를 통해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일생을 같이 살았던 소유보다 어쩌면 쇼코가 더 그들의 본모습에 가깝게 다가갔다. 잊고 있던 생기의 불씨를 살린 일종의 땔감 역할을 했다. 이런 목적과 조건 없는 관계는 오히려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쇼코는 당시 소유가 평생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그래서 쇼코가 진실로 그들에게 다가갔는지 미소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당시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16살 소유에게 쇼코의 미소는 차갑고 어른스럽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동경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쇼코의 편지는 언제나 공평했다. 나와 할아버지에게 같은 날, 같은 분량의 편지가 왔고, 어떤 날은 내가,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쇼코의 편지를 우편함에서 발견했다.


 쇼코의 편지는 성숙하지 못한 분절된 자아로 표출됐다. 소유에게는 우울한 내용으로, 할아버지에게는 밝고 명랑한 소녀의 일상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어도 그 둘에는 거짓이 없었다. 모두 쇼코였고 아직 그녀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의 파편이었다. 쇼코는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부담 없는 말동무였다.


 편지가 끊기고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소유는 쇼코의 거처를 알게 되고 방문했다. 소유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쇼코를 보며 어리숙한 우월감은 느꼈다. 공부도 곧잘 하고 도쿄든 어디든 먼 도시로 꼭 떠나겠다고 했던 쇼코는 그렇게 고향에 남겨진 채 소유에게서 잊혀졌다.


 "쇼코야. 쇼코가 우리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구 영화감독도 되구. (...) 멋지다고 본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찾아와 쇼코가 다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그때 소유는 대학 졸업 후 변변치 않은 영화 감독으로 허송세월 보내고 있었다. 편지 속 쇼코는 건강했고 물리치료 선생이 되었다. 쇼코는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가족인 소유도 몰랐던 사실이다. 사실 소유만 몰랐다. 어머니도 쇼코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때 소유에게 남아있던 안일한 우월감이 무너졌다. 도취되었던 감정이 사라지자 현실이 남았다. 할아버지의 부재, 사무치는 소외감 등을 소유는 차갑게 맞이했다. 마지막이 돼서야 쇼코의 편지를 빌려 어렵게 꺼낸 할아버지의 진심은 그간 소유의 모든 행적을 이해하는 듯 포근했다.


 소유는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쇼코도 만났다. 만나고 싶지 않았던 쇼코를 보니 당시의 우월감이 떠올랐다. 쇼코의 그늘도 보지 못한 어린 시절이었다. 이제는 쇼코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소유야."


 "응."


 "우린 이제 혼자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소유와 쇼코에게는 길고 어두운 시간이 필요했다. 소유가 쇼코에게 자신의 엉상한 단편영화를 보여주기까지, 쇼코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고향에서 일하며 밝게 웃을 수 있을 때까지 참 오래 걸렸다. 둘이 헤어질 때 김포공항에서 했던 포옹은 서로를 보듬어주었다. 출국하는 쇼코는 어린 시절과 같은 미소를 얼굴에 새겼다. 30살 즈음 쇼코의 서늘한 미소에는 소유 본인이 서려 있었다. 그 미소는 지금까지 있던 고난에 대한 이해가 깃든 하나의 거울이었다.


 소유와 쇼코는 서로 '나'이자 남이었다. 이방인이었던 16살 쇼코가 소유의 집에서 일으켰던 변화는 쇼쿄만이 할 수 있던 일이 아니었다. 또, 정신병에 걸려 집에 갇혀 있던 쇼코에 비해 소유가 더 강인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어긋난 시간대에서 서로의 거울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미 봤던 모습, 그 시간을 지나온 모습을 각자에게 느끼며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거울은 결코 거짓말하는 법이 없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최은영


-참고 자료


오윤주, 먼 곳에서 온 사람-이방인 서사의 문학교육적 함의, 2020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살 수 있구나' https://youtu.be/LZXwhIaur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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