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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Feb 17. 2022

"나"로 돌아오는 여행

데미안 서평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데미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주요 개념 정도만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예정이다. 먼저 니체 철학이다. 니체에 대해서는 작중 '에밀 싱클레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에밀 싱클레어'의 책상 위에 놓인 책 따위로 몇 번 작품 내에서도 언급된다. 절대적인 선악 구분 기준은 없다고 한 반도덕주의, 강한 자기 극복 의지를 통해 인간의 초월을 긍정하는 위버맨쉬, 이 둘이 니체 철학과 '데미안'이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추가로 융 심리학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실제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 집필 당시 칼 융에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하며 그로 인해 소설 속에 융 심리학이 많이 녹아들었다고 전해온다. 칼 융에 의하면 우리의 정신은 통제 가능한 사회적 자아로 해석할 수 있는 에고(ego), 통제할 수 없는 본질적인 내면적 자기인 셀프(self)로 나뉜다. 그중 셀프(self)는 깊은 자아에 남아있는 상처인 그림자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대면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정도를 염두에 두고 '에밀 싱클레어'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더 수월하게 '데미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소설 <데미안>은 성장소설


 소설 '데미안'은 단순히 원론적인 이야기로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겪는 일련의 과정을, 처절한 독백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길을 보여줄 뿐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가며 성장통을 겪는다. 이때 독자가 그 성장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했다면 소설 '데미안'의 핵심은 꿰뚫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성장소설이기에 그렇다.


 10살 무렵 '에밀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 어두운 세계를 각각 이분법적으로 파악한다. 기독교적인 집안의 영향으로 자신은 밝은 세계에 어울리는 존재이며 어두운 세계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에 가장 근접했던 아담과 이브마저 선악과를 탐했던 만큼 타락은 매혹적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동네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했던 거짓말 때문에 점점 수렁에 빠진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는 동네 시정잡배 '프란츠 크로머'에게 종속될 정도로 나약했다. 그때 '에밀 싱클레어'의 귀인 '막스 데미안'이 나타나 그를 구원한다. 이때부터 소설은 치밀하게 나약하고 어린 '에밀 싱클레어'의 혹독한 성장기를 그린다.


3. 카인의 표적 & 아브락사스


 성경은 카인을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 소개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아우 아벨을 살해하고 추방당한 카인은 기독교적인 시각에서는 결코 추앙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때 카인의 이마에는 일종의 낙인이라 할 수 있는 표적이 새겨진다.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결과로도 볼 수 있는 낙인을 범인은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스 데미안'의 의견은 달랐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에게 있었을 테고, 그들의 눈빛에서 담력과 지혜가 느껴졌을 거야. (...) 그는 '표적'을 가지고 있었어. (...)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무서웠던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원래대로 우월한 훈장처럼 설명하지 않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 (...)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니까."


 '막스 데미안'은 카인의 표적은 용기와 개성이고 다른 이와는 차별되는 비범함이라 말하며 '프란츠 크로머'에게 시달리는 '에밀 싱클레어'를 구해준다. '에밀 싱클레어'에게서 이 카인의 표적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나약했던 '에밀 싱클레어'에게 어째서 카인의 표적이 보였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모든 발전과 성장은 문제 인식에서 시작한다. '에밀 싱클레어'는 이 세계가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본인이 속해있지 않던 어두운 세계로 한번 경계를 넘었다. 그러한 행동은 타락과 몰락 등으로 비하될 순 있으나 긍정적으로 본다면 두 세계에 대한 합일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선한 세계에서 악한 세계로 발을 담갔다 해서 '에밀 싱클레어'가 일순 악인이 되진 않았다. 다시 말하면 두 세계의 합일이란 선악 구도로 두 세계를 양분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기득권의 편의의 의해 또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의해 생긴 일반적인 인식을 홀로 사고하여 모순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에밀 싱클레어'가 카인의 표적을 지닌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반은 신이고 반은 악마인 존재다. 왜 그에게로 날아갈까 생각해보면 이미 상술한 내용의 반복이다. 이 세계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며 무엇을 옳다고 여기며 정진해가야 할 것인가 질문할 수 있다. 해답은 내면에 있다. 자기 자신을 돌보며 답을 찾아가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는 이의 마음가짐으로 가장 합당할 것이다. 날아간다는 사실 자체와 그 대상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하고 나름의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앞서 셀프(self)의 그림자를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4. 스승 피스토리우스


 '에밀 싱클레어'는 방황하며 하루하루 허비한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두 번째 귀인이자 스승이 바로 '피스토리우스'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아는 '에밀 싱클레어'에게 내면에 물어보고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실 알려준다는 표현도 적확하지는 않다. 그렇게 사고하도록 유도한다 정도가 더 어울릴 수 있다.


 어쩌면 '에밀 싱클레어'에게 있어 '피스토리우스'는 '막스 데미안'보다 더 훌륭한 스승일 수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풋내나는 어린 소년 '에밀 싱클레어'에게 자기 생각을 공유하며 천천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전수한다. 어린 소년은 점점 홀로 사유하고 사고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러다 '에밀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가 실제로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자신의 이념을 많은 이에게 설파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것은 '피스토리우스'가 '에밀 싱클레어'에게 가르쳤던 방법하고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에밀 싱클레어'는 무조건적인 지도자인 줄 알았던 '피스토리우스'의 모순을 목도한다. 자신의 스승마저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에밀 싱클레어'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지탄의 목소리를 피하지 않고 용기 내 발산했다. '에밀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에게 상처를 주었다 생각하고 후회했으나 이는 스승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방증이며 일종의 동정이기도 했다.


5. 에바 부인


 "돌이켜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요? 그저 어렵기만 했던가? 그러나 역시 아름답지는 않았는가? 하고 말이에요."


 '에밀 싱클레어'는 그의 이상형을 그대로 그린 가상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이내 현실에서 마주한다. 그녀는 바로 '막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었다. '에밀 싱클레어'에게 있어서는 운명처럼 다가온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에밀 싱클레어'는 성장하는 과정의 한복판에 놓여있었다.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며 위태로웠던 '에밀 싱클레어'는 어느새 동급생 '크나우어'의 자살도 말릴 수 있는,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인한 줄 알았던 '에밀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 앞에서 다시 '프란츠 크로머'에서 휘둘렸던 소년이 되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나는 아무런 선물도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당신에게 획득 당하고 싶은 거예요."


 '에밀 싱클레어'는 피상적인 사랑에 집중했다. 그저 갈구했을 뿐일 수도 있다. 그런 그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종말 앞에서 힘없이 사라진 히야신스 향처럼 서서히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 중 부상으로 침대에 누워있던 '에밀 싱클레어'는 옆자리에 익숙한 얼굴이 있는 것을 알아챈다.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있던 '막스 데미안'이었다.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지에 있을 때는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자네에게 해주도록 말이네. 눈을 감게, 싱클레어!"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치지 않고 쉴 새 없이 피가 조금씩 흐르는 내 입술 위에 그가 가볍게 입 맞추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이 이르러서 '에밀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고 더 나아가 '막스 데미안' 자체를 이어받았다. 물론 그렇게 성장하고 한 단계 나아갔다 해도 끝은 아니었다. '에밀 싱클레어'는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일이 아프다고 했다.


6. "나"에게로 회귀


 최초 발단은 '에밀 싱클레어'의 내면에서 발현했다. 스스로 이 세계의 모순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다. 그 모순은 선명해지더니 세계의 거대한 담론으로 발전하기보다는 그대로 '에밀 싱클레어'에 내면에 들어앉았다. 자기 자신의 모순을 하나씩 타파해나가는 것이 '에밀 싱클레어'의 여정의 기원이자 결과였다.


 알을 깨야 한다. 지금 목전에 둔 세상이 또 다른 알의 내부일 수 있다. 아직 그 끝에 가닿지 않아 깨야 할 껍데기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래도 '에밀 싱클레어'처럼 문제 자체에 대한 인식을 품에 안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마에 카인의 표적이 새겨질 수도 있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미르북컴퍼니  

작가 : 헤르만 헤세

옮긴이 : 이순학


-참고 자료


홍길표, 헤르만 헤세의 ‘정치적 소설’, 『데미안』, 헤세연구 제42집 5~21


이경규, 헤세의 교양소설에 나타난 교양인의 길 -『페터 카멘친트』, 『데미안』, 『유리알 유희』를 중심으로-<사고와 표현> 제13집 3호 265-295


이창남, 사랑의 데몬 - 헤세의 『데미안』에 나타나는 에로스와 문명의 변증법, 헤세연구 제13집,


 기획특강 - 지식의 기쁨 - 진정한 나를 찾아서 '데미안' 001~003  

https://youtu.be/pfca94Gyk6Y

https://youtu.be/7WbtX6NYEW8

https://youtu.be/2Ce7exwL-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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