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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04. 2019

딸의 행복 독서법

“몇 권 안되는 책일망정 속속들이 알아 그 책들을 손에 집어 드는 순간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들의

감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편이 더 귀하고 만족스러우리라”

- 헤르만 헤세 - 


서재에 앉아 한 권의 책을 읽으려 하면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줄지어 눈에 밟힌다. 자리에서 일어나 쌓인 책들을 보고 있으면 이 책에 마음이 동하고, 저 책에 마음의 분탕이 인다. 책은 독재자다. 한 번에 오직 한 권의 책만을 허락한다. 책만 읽으며 유유자적할 팔자를 타고 난 것도 아니니, 그저 책 읽는 속도만 타박하다 소득 없이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책을 읽기 전 일상이다.


책 읽는 속도가 매번 불만이다. 습관인지 능력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읽어야 글이 눈에 들어오고 머리로 옮겨간다. 그러니 책 한 권 읽는데 며칠이 걸린다. 가끔 내가 난독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책 한 권을 3~4시간 만에 뚝딱 읽는다는 이들이 가장 부럽다. 

큰 아이의 책 읽는 습성은 나와 다르다. 책을 빨리 읽을 뿐 아니라 여러 번 읽는다. 나와는 다른 다독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서점에 갈 때 마다 같은 책을 읽는 적도 많다. 한 날은 몇 번씩 읽었던 책을 가져와 “아빠, 나 이 책 사줘”라고 한다. 아니 외울 것 같이 여러 번 읽었던 책을 왜 사달라는 건지… 이해를 구하려 권유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한다. “이 책은 많이 읽었는데 왜 사달라고 해? 안 읽은 책을 사야지”. 큰 아이는 “읽다 보니 책이 너무 재미있고 그림도 예쁘다고, 그래서 갖고 싶어졌다”고 한다. 무턱대고 사놓고 읽지도 못해 책으로 탑을 쌓는 아빠보다, 읽고 또 읽어 갖고 싶은 책만 사겠다는 초딩 딸이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독서가이지 않을까 싶다. 딸은 많은 책을 읽는 다독가는 아닐지 몰라도 몇 권의 책에서 읽었던 다양한 감동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행복한 독자임에는 틀림없다.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양에 집착하기 보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반추하며 읽고 또 읽어 그 뜻을 온전히 헤아리고, 거기에 나의 경험이 입혀진 또 다른 성찰의 산물로 다시 태어날 때 책은 나의 마음이 되고 몸이 된다.  책을 읽음은 결국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고, 깨달음은 양적 산물이 아닌 질적 산물이니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계속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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