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Influence Oct 11. 2019

우리는 쓸데없는 짓을 할 때 행복하다

“엄마, 우리 다O소나 갈까?”


둘째 아이는 심심하면 집 앞에 들어선 3층짜리 다O소를 가자고 한다. 거길 왜 그렇게 자주 가냐고 물으면, “그냥~ 심심하니까”라는 아주 간결하고 더는 대꾸를 허락하지 않는 폐쇄형 답변을 하며 당당해 한다.


아이가 가장 많이 구입하는 최애템은 스티커이다. 갈 때마다 (내가 보기엔) 별 쓰잘데 없는 스티커를 그렇게 사서 모은다.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매번 다른 스티커를 골라온다.


아내에게 들은 얘기인데, 아이들에게 다O소는 어른들의 백화점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둘러보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몇 가지 물건을 비교적 싼값에 들고 나올 수 있는…아이들 세계에서 쇼핑을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용도가 불분명한 스티커를 손에 들고 오는 아이에게 도대체 이런 건 왜 자꾸 사냐고,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또 “그냥, 귀여우니까”였다. 환장한다. (‘그냥’이라는 말은 하는 사람에겐 최적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난해하기 짝이 없는 우리말에만 있는 엄청난 단어이다) 머릿속에선 “아~ 내가 저 돈 벌려고 회사에서 얼마나 시달리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았다 한다.

며칠 뒤 퇴근길에 만난 아이가 이번엔 나보고 다O소를 가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살 것(분명한 용도가 있는 것)도 있고 해서 아이를 따라가봤다. 스티커 앞에 발길을 멈추고 있던 아이를 좀 떨어진 곳에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스티커를 고르는 모습이 새삼 진지하다. 한참을 지나 마침내 고른 두 장의 스티커를 바라보는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집에 오는 길에 “스티커 사서 모으기만 하니?” 하며 물었다. 아이는 “아니, 공책에도 붙이고,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핸드폰에도 붙여. 아빠도 하나 붙여줄게.”라고 말하며 기습적으로 내 핸드폰 케이스에 스티커를 붙였다. (사실 난 내 물건에 뭘 붙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이렇게 쓸데없는 것에도 저렇게 행복해하는구나! 하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쓸데없는 짓을 통해 행복해하며 살고 있을까?” 


사람이 꼭 쓸모에 의해서만 소비하고 행동한다면 인류가 이처럼 다채롭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부터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만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써먹지도 못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것부터 돈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영양분도 거의 없는 쓰디쓴 커피를 매일 홀짝거리고 있다. 그뿐인가? 입을 옷이 있음에도 옷을 사들이고, 타고  다닐 차가 있음에도 포털사이트에 오른 차에 대한 기사를 기웃거린다. 사실 아이가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끝내줘서 다행이지, 쓸데없는 술을 왜 그렇게 마시고 다니냐는 반격을 해왔다면 속절없이 GG(Good Game)를 쳤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쓸데없는 짓을 할 때 행복하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고색창연한 문장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 인간은 쓸데없는 짓을 즐길 줄 아는 종(種)이다. 쓸데없는 짓을 거의 하지 않는 다른 동물처럼 살아간다면…상상만 해도 끔찍하게 재미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쓸데없다고 하는 것 그리 쓸데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는 행위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가치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행복을 위해서라고 전제한다면 그걸로 됐다. 쓸모가 행복 앞에서 뭐가 그리 중요해.

매거진의 이전글 딸의 행복 독서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