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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18. 2019

딸의 낯선 여행에 신발이 되어주자

사춘기 딸과 사는 법

“너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면 학원 가지 마 그냥”

“내가 뭐 어쨌다고…”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야? 너만 사춘기 겪는 줄 알아?”

“아~ 몰라” (꽝)


큰 아이는 아내와 실랑이 끝에 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아내의 일상이다. 제법 아내 말을 잘 듣는 편이던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감정은 예민해지고 행동은 무기력해졌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낸 눈물 때문에 얼굴엔 그늘이 졌다. 눈에 띄게 얼굴과 몸에서 아이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번엔 무슨 일로 목소리가 높아졌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학원 숙제와 방 정리… 엊그제 아내에게 혼나고 약속했던 일들을 오늘 또 무시하고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 늦게 들어와서 인사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단다. 화가 날 만도 하다.


참다못한 아내가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무력진압을 예상했는지 아이는 문을 잠갔다. 공권력 앞에 개인의 힘은 허망한 것. 곧 문이 열리고 한 시간 넘도록 둘은 옥신각신했다. 마음이 심란해져 읽던 책을 놓고 거실에 서성거리니 둘째가 옆에 와서 속삭였다.


“언니, 그거 왔나 봐. 춘기 춘기”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내 생각엔 성격상으로 보면 둘째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넌 더 심할 것 같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저 땐 다 저래, 언니한테 그러지 마” 하고 말았다.

 

대화(?)를 끝내고 방에서 나와 각자 화장실로 향했다. 두 사람의 붉어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 냉랭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건 나뿐인가? 모른 척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밤이 늦었지만 아이에게 편의점에 같이 가자고 했다. 달달한 거라도 사주면서 아이의 기분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았고, 아이가 잠든 뒤엔 아내랑 마실 맥주도 사야 했기 때문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은 없고 거리는 어두웠다. 아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왜?”

“응?”

“왜 손을 그렇게 꼭 잡아?”

“어두워서 무서워”

가는 동안 말없이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아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무서울 땐 이렇게 손을 꼭 잡아주면 좀 덜 무섭지? 무서울 땐 그렇게 하는 거야. 우린 가족이니까.”

큰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낯선 길을 갈 땐 익숙한 신발이 필요하다는 은희경 작가의 문장이 생각났다. 딱딱하고 거친 이 낯선 길을 가는 두 사람은 분명 편하고 익숙해진 신발이 있어야 한다. 평행선을 걷고 있는 두 사람에게 아빠란 존재는 기꺼이 신발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두 사람 낯선 여행을 마치는 날 다치지 않고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잠든 새벽, 아이에게 줄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OO에게


어젯밤 아빠와 어둠 속을 걸어갈 때

아빠 손을 꼭 잡았었지?

어두워서 무섭다면서 말이지.

눈에 보이는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생겨났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두려울 땐

그 손을 꼭 잡아주는 거야. 두렵지 않도록


엄마도 요즘 너를 대할 땐

어둠 속을 걷는 마음일 거야. 어둡고 두렵고…

눈에 보이는 너로 인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생겨났기 때문일 거야.

네가 잘못될까, 네가 후회할까

이렇게 두려울 땐

그 손을 꼭 잡아주는 거야. 두렵지 않도록.

그게 가족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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