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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25. 2019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 길어내기

“아직 안 갔어?”

“갈 거야”

“그게 그건데 뭘 그렇게 신경을 써?”


큰 아이는 학원 갈 시간이 다 되도록 앞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늘은 앞머리가 망했다며 살짝 말았다가 다시 폈다가 물을 묻히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반복행위는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못하는 무의미한 행위처럼 보였다. 생각 같아선 “아무도 널 자세히 보는 사람 없으니까 그냥 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생각나는 말을 다 하지 말자는 다짐이 생각나 침을 삼키며 함께 내려 보냈다.(나는 최근 할 말을 하기 전에 침 한 번 삼키며 생각하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아이가 학원에 늦는 바람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차에 앉아 ‘나도 어릴 때 그랬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봤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가 사춘기를 겪었던 걸로 생각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질 정도로 움찔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학교 규정에 어쩔 수 없이 ‘스포츠머리’로 밀었다. 남 다르게 힘이 좋던 생머리라 머리 감고 그냥 두면 제멋대로 뻗쳤다. 학교 가기 바쁜 아침에도 머리가 마음에 안 들면 몇 번이고 다시 머리를 감고 말리고 바르고 세웠다. 학교 안 가냐고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오히려 헤어드라이어를 최고 단계로 올리고 머리만 보고 있었다. 욕실이 하나뿐이던 그 시절, 들어가면 한 시간씩이라고 불평하던 식구들의 날 선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식구들도 나 같은 마음이었을까? “누가 널 봐준다고…”


이런 행동은 정도가 좀 덜해지긴 했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가기 전엔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데도 전투복에 ‘칼 줄’을 내고 군화에 ‘물광’을 낸다고 며칠씩 붙들고 있었다. 정작 민간인이 되어 보니 휴가 나온 군인은 그냥 가로수나 보도블록과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땐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았고, 내 맘속에 한 줄기 강렬한 빛이 나만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한다. 주로 청소년기에 심해지고 나이가 들수록 빛줄기가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남들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맞는 얘기다. 누가 내 머리칼 조금 삐뚠 것을 살피고 기억하겠는가? 나에게 관심 없는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미한 반복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얼핏 보면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단어를 넣었다 뺐다 문장을 썼다 지웠다… 글을 쓸 때만 그런가? 강의자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고 행사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보고를 할 때도 그렇다.


우리가 살면서 매일 하는 행위는 아이가 앞머리의 위치를 조금씩 옮기는 것과 같은 것.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우리는 모두 좀 더 나아 보이고 싶고, 좀 더 잘하고 싶다. 따라서 그에 따른 노력은 의미 유무를 떠나 그저 수반될 뿐이다. 다만 각자의 관심과 상황이 다를 뿐.


역설적으로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으로 우리의 삶은 조금씩 나아졌고, 세상은 견고해졌다.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최선을 선택하고 결국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우리 삶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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