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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Nov 01. 2019

욕망의 실체는 삶의 과제를 만났을 때 드러난다

“아! 수학 쌤에게 문자가 오면 내가 이렇게 궁색하고 작아질 수가 없다."

"국어 쌤에게 오는 문자는 그렇게 당당하고 기분이 좋은데 수학 쌤에게는 답장 쓰기가 무서워…”

주말 오후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는 큰 아이 학원에서 온 두 가지 메시지에 희비가 엇갈린다.


큰 아이는 수학을 어려워한다. 반면 국어는 또래보다 높은 수준의 학업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뜻밖의 발견이다. 당연히 수학은 싫어하고 국어는 좋아한다.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한다고 대학 입학을 보장해 준 적이 있던가?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수학학원에 보냈다.


처음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낸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아내가 아이를 붙들고 앉아서 가르쳤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급기야 아내는 아이가 고학년이 되자 학원을 물색했고, 적당한 곳을 찾자마자 바로 학원비를 송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엄마와 남남으로 지낼 수는 없기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던 큰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 이런 현실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렇다고 수학을 좋아하거나 잘한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수학학원에 가는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숙제는 가장 마지막에 마지못해 하는 일일뿐이다.


얼마 전 여름 방학에는 국어 특강을 한정적으로 보냈다. 학원이라고 다 같은 학원은 아닌가 보다. 학원은 다 가기 싫다고 했던 아이가 여기서는 사뭇 달랐다. 첫날 레벨 테스트부터 하이 클래스를 기록하더니 자신보다 상급생 반으로 편성이 됐단다. 매번 수학 때문에 기죽어 살던 큰 아이에게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창 놀고 싶은 중딩이 한창 놀고 싶은 시간인 일요일 오후에 학원을 가지만 싫은 기색이 없다.

 

숙제하는 것만 봐도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루 온종일 미루고 미루다 자기 직전에 그것도 온갖 딴짓을 다하며 하는 수학 숙제(결국 숙제는 항상 거의 다 못하고 잠들고 만다. 속 터져서 원…)와는 다르게 국어 숙제는 새벽이든 아침이든 알아서 해간다. 그러니 두 과목 선생님에게 오는 메시지에 아내의 처신이 극도로 다를 수밖에…


DNA는 감출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나에게도 수학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어릴 적 수학 때문에 수능 석차가 오르지 않아 애가 달았다. 지금은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수학으로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지만, 아직도 통계는 어렵고 피하고 싶은 과제이다. (통계는 수학이 아니라는 주변의 얘기가 있지만, 그건 능력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일 뿐, 나에게는 그게 그거다.) 수업도 듣고 대여섯 권의 책을 사서 혼자 공부도 해보고, 직접 논문도 써봤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주변에 통계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사람이 참 아이러니한 게, 그렇게 부럽고 해야만 하는 과제라면 만사 다 재치고 그것부터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욕망의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다.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쓸 텐데, 하고 싶지 않고 재미가 없는 일은 어떻게든 피해 가고 싶다. 오히려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것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큰 아이와 나에게는 수학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외국어일 수도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일단 시작해 보면 알 수 있다. 지속적으로 손이 가는지 가지 않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좋은 기분을 유지하며 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일 가능성이 많다. 앞으로 남은 생애는 그것에 몰입해야 행복할 수 있다.


단, 세상 일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적어도 우리가 성취하고 싶은 가치 있는 일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무던하게 애를 써야 얻을 수 있고, 필요 없는 것은 또 그렇게 애를 써야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니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나의 여정에 넘어야 하는 과제라면 적어도 담은 쌓지 말아야 한다. 수학도 영어도 통계도 글쓰기도… 담쌓으면 언젠가는 그 담을 넘어가느라 개고생을 하게 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담을 넘지 못해 그냥 그 자리에서 좌절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되 좋아하지 않는다고 담을 쌓지는 말자. 싫다고 하는데도 엄마가 수학 학원을 보내는 이유를 큰 아이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리도 구구절절하게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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