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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Nov 08. 2019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되고 싶은가

가정의 문화를 만드는 부모

“영어 점수가 이게 뭐냐? 힘들게 돈 벌어서 공부시켰더니... 그렇게 공부해서 되겠어?”

“……”

“왜 대답을 안 해?”

“아빠는 근데 왜 공부 안 해요? 책도 안 보고요.”

“공부는 학생인 네가 하는 거야. 아빠는 너 공부시키려고 돈 벌러 가잖아.”

“어른 되면 공부 안 해도 돼요 아빠?”

“……”


퇴근길에 학원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앞서가던 남자아이와 그의 아빠가 하는 대화를 들었다. 아이들에게 누군지 물으니 큰 아이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이고 영어학원도 같이 다닌다고 한다. 아파트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접어드는 아이 아빠를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도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라 그의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아이의 부모는 교육열(?)이 엄청나다고 했다. 아이도 공부를 곧잘 하는데, 특히 수학을 잘하고 영어는 보통 정도라고 했다. 지난번 줄넘기 수행평가가 있을 땐 11시가 넘은 늦은 밤까지 놀이터에서 아이를 연습시키면서 목표 달성을 못하면 손바닥을 때려가면서까지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 친구들 부모의 학력과 출신학교를 자주 묻는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이 되었다. 자신이 못한 공부와 학력에 대한 미련을 아이에게 증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빠는 돈 벌어오는 사람인가?

내 아이들은 왜 공부를 하는지 알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가?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작품 『인생』에서는 초년 인생을 망나니처럼 살았던 주인공 푸구이(福貴)가 나온다. 노름판에서 돈을 탕진하고 기생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말한다. “이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살면 어떻게 하느냐? 우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나라의 관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아버지에게 푸구이는 “그렇게 좋은 건 내 아들이 하도록 넘겨줘야죠.”라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욕을 먹던 푸구이 옆에서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한다. “저 얘긴 푸구이 네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에게 했던 얘기란다.”


가정에도 문화와 풍토가 있다. 가풍이라고도 한다. 문화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 태도와 행동을 지배한다. 즉,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데 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면 그 생각과 행동을 실천하는데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자연스럽고 많은 힘이 들 수 있다. 문화는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내재된 것이다. 그러나 그 문화도 조금씩 바뀌어왔고 그 과정에는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화의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와 그들 모두가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가정은 작지만 모든 조직의 기초가 되는 하나의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정도 문화가 있고 부모의 리더십이 존재한다. 작은 조직에서의 리더십은 리더의 모습 그 자체이다. 솔선수범은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드(Aeneid)’에서나 지금의 Z세대에게나 불변의 리더십 요인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들도 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는 어른들을 ‘꼰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자녀는 남보다 가까운 존재라고 착각하지 마라. 물리적 거리는 그럴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모르는 일이다.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그들이 독립할 수 있 때가 오면 가장 먼저 물리적 거리를 벌릴 것이다. 아이들은 말하는 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큰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이전까지 없었던 일이라면 더더욱 내가 먼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나의 보여줌이 지속되면 문화가 될 수 있다.


우치다 타츠루 교수는 “인간은 자기가 손에 넣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증여함으로써만 손에 넣을 수 있다”라고 한다. SNS의‘좋아요’나 ‘댓글’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때에 곰곰이 고민하면 귀한 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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