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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Nov 22. 2019

어서 와 'Not to do list'는 처음이지?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 만들기

“유O브 좀 이제 그만 보면 안 되니?”

“양말 좀 빨래통에 집어넣고…”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이면 둘째 아이에게 잔소리가 이어진다. 주말에도 봉사활동에 학원을 다니느라 바쁜 큰 아이에 비해 아직 초딩인 둘째 아이는 주말 내내 스마트폰을 들고 뒹군다. 보던 영상이 끝나면 비슷한 유형의 영상을 추천해 주는 *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 때문에 별다른 기대나 계획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추천해준 영상을 무한정 보게 된다.

 

둘째 아이가 주로 보는 영상은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밍O발랄’부터 ‘액괴’ 만들기, 각종 디저트를 만드는 영상에 심지어 20년 전 방영되었던 ‘순O산부인과’까지 아주 다채롭다. 지금은 30대가 된 어린 미달이(김성은 분)를 보면서 하염없이 웃고 있는 둘째 아이를 보면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리가 멍해진다.

 

물론 이 글을 보면서 혹자는 “아빠가 좀 놀아주지 그러냐?”라고 하실 수도 있다. 욕먹을 각오하고 변명을 해보자면, 가방끈을 늘리자는 순간의 선택을 잘 못한 탓에 집에 있는 날이면 논문이다 자료 작성이다 해서 쉴 새가 없다. 순간의 선택을 잘 못한 것도, 어릴 때 공부 안 한 것도 다 내 잘못이다. 그래도 그렇지 아침에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걸 보고 서재에 들어갔다가 허리 좀 펴러 나왔을 때 자세만 바꿔 계속 유O브를 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되도록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좀 보다 말겠지”하며 다시 들어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도 또다시 그러고 있는, 아니 이번엔 아예 양말을 발밑에(발로 벗었을 가능성이 다분한) 벗어놓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초딩 중년 아저씨를 쳐다보노라면 참았던 울화가 용솟음친다.


족히 3시간이 넘었을 시간 동안 스트리밍 되는 수십 편의 영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잔소리의 어머니다. 아이를 불러 잔소리를 쏟아 낸다. 아이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충전기에 꽂힌 폰을 보니 배터리가 6%이다. 어이가 없다. 아이 방에 들어가서 스마트폰과 무분별한 유O브 영상의 해악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한다. 그래도 맘이 놓이지 않아 유O브 안 보기, 양말 아무 데나 벗어 놓지 말기 등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을 만들자고 했다. 표정을 보니 진정성 있는 목록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다.(아오~) 마음이 좀 풀리면 만들자고 하고 나왔다.


우리는 ‘To do list’라고 해서 ‘해야 할 일 목록’은 자주 만든다. 심지어 나는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 수첩에 ‘To do list’ 양식을 빌린 해야 할 일을 작성한다. 그런 후 일을 해치우면 빨간펜으로 하나씩 지운다. 하루 동안 혹은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을 눈에 보이게 해 놓고 그 일에 집중하고, 중요하고 급한 일들을 우선순위화하기 위한 행위이다. 매일 하는 ‘해야 할 일 목록’은 익숙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은 왠지 낯설다.

 

아이와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다 아이도 아이지만 이 일은 나에게 더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너무나 많다. 잠에서 깨어 혹은 잠자기 전 뜬금없이 SNS를 보면서 시간을 허비한다던가, 공부할 시간에 소설책을 뒤적거린다던가, 스포츠를 보다가 플레이가 맘에 안 든다고 느닷없이 ‘아~새끼 진짜’ 이런 말을 쓰는 행동(벌써 아이들에게 몇 차례 지적을 받았다.) 들이다.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나이가 들면 좀 더 점잖은 사람이 되고자 바라면서도 입이 거친 것을 보면 ‘Not to do list’ 만들기는 나의 ‘To do list’ 가장 위에 적어야 할 목록임이 틀림없다.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을 작성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해야 할 일 목록과 같이 목록표에서 자기관리와 훈련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보다 적어놓고 본다는 건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 스스로 써놓은 리스트를 보면서 하지 않으려고 매일 반성하고 주의했던 시간들은 나에게 보다 정제된 삶을 선사할 것이다. 『뉴필로소퍼』의 편집장인 안토니아 케이스는 ‘Not to do list’를 작성하다 보면 ‘To do list’에 있는 항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좋은 행동은 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만큼 노력해야 떼어낼 수 있다. 시간 낭비하기, 욕하기, 흡연, 게으름, 자기 전 막장드라마 보기, 습관적으로 SNS 들여다보기와 같은 일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하기, 운동하기, 독서하기, 봉사하기, 일찍 일어나기와 같은 해야 할 일을 지켜나가는 것만큼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자꾸 더하기만 하는 것보다 어떤 것은 빼는 것이 효과가 좋을 때가 있다. 우리가 ‘To do list’ 쓰는 것 반만 ‘Not to do list’를 써보자.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오늘 저녁 ‘To do list’ 맨 위에 적어야 할 일은 ‘Not to do list 작성하기’로 정했다.


* 필터 버블 : 미국 시민단체 ‘Move on’의 엘리 프레이저가 쓴 ‘생각 조정자(원제: The Filter Bubble)’에 나오는 용어로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이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나 콘텐츠를 제공하여 이용자가 필터링된 정보만 보게 되는 현상


* 온라인 "필터 버블"을 주의하세요 (TED, Eli Parise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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