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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09. 2019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수연 라디오 PD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될 기회가 더 많이 열린다
- 장수연 -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여직원들을 보면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뭐랄까… 좀 더 여유롭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인내심이 풍부해진 느낌이다. 특히, 평소에 상대적으로 예민하거나 까칠했던 이들에게서는 이런 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주변에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에게 물어보니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알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여성이야말로 아이를 출산하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혁(transformation)을 경험하게 된다. 출산과 육아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가졌던 삶의 의미관점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그릇에 출산과 육아의 정보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라는 또 다른 하나의 그릇이 생기는 셈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신이 아무리 성격이 있고 까칠해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 앞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동원해 아이를 보살피다 보면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전념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을 넓히고, “그럴 수 없었던 것”이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변화된다. 역설적으로 부모는 아이의 양육을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성인이 되고 아이가 생겼음에도 아직 과자를 찾고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나를 보며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배려이자 양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디오 프로듀서 장수연은 “아이가 생기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될 기회가 더 많아진다”라고 말한다. 어른이라 아이를 낳은 것도, 아이를 낳아 어른이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가 주는 기회를 통해 어른의 역할을 해내면서 점점 어른은 되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부모님이 그러듯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또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는 길을 열어주는 삶의 선수 학습(prerequisite)이 된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가르치며 배우는 동반자적 관계이듯,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고, 아이는 양육을 받는 가운데 부모에게 어른이 될 기회를 주게 된다. 어른이란 완성태(完成態)가 아닌 하나의 과정(過程)이다. 어른이란 존재는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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