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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20. 2019

스트레스를 대하는 나의 신념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

몇 주 만에 복귀한 사무실 자리에는 직무스트레스 검사 결과가 올려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지만 휴식이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되었다.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반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휴식 부족은 일과 공부를 함께 해야 하는 셀러던트의 삶을 자처한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다. 물론 지금도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살만한 세상이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어 사람을 사람이 괴롭히는 일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8~9년전에는 내가 지금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잊고 싶은 시간이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시간들. 부장에게 깨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4장짜리 보고서를 가지고 부장에게 가면 운이 좋을 경우 30분, 좋지 않으면 2시간이 족히 넘도록 박살이 나서 반송장의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듣고 있으면 ‘작정하고 깨도 그렇게 천재적 재능을 동원해 깨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고서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 각을 떠서 완벽히 분쇄시켰다. 내가 깨지는 동안 부서 동료들은 한 사람씩 자리를 떴다. 자신이 깨지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탈탈 털리고 자리로 오는 길에 다른 부서 사람들의 측은하고 의문 가득한 눈과 마주치면 그렇게 마음이 쓰리고 아릴 수가 없었다.

6개월이 지나도록 하루가 멀다 하고 같은 일상이 벌어졌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6개월을 깨지니 이제 물어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면 도리어 그것을 무기 삼아 난자했다.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 대꾸도 없는 나를 보며 “이제 아예 개기네”라고 그가 혀를 차던 날, 나는 창밖에 청명한 하늘이 원망스러워 그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자리로 돌아오며 친했던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는 나를 1층 회의실로 데려갔다. 순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라고 말하며 참았던 눈물을 토해냈다. 처자식도 있는 서른 넘은 놈이 회사에서 우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터져버린 눈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오늘까지만 다니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선배는 “내가 많이 미안하다… 너 꿈 많은 놈이잖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 사람 때문에 여기서 그만두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냐?”라고 하면서 마지막 말을 건넸다. “너한테는 그 사람보다 네가 더 중요해”. 선배는 철저히 내 삶을 말했지 나에게 가족이나 회사 같은 어떤 짐도 지우지 않았다. 그게 난 지금도 고맙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가니 아내와 2살, 5살 난 아이들이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밤이 새도록 내 삶이 왜 소중한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나 조직개편이 되고 부장이 부서를 떠나는 바람에 그와 나는 더 이상 같은 부서도, 같은 보고서를 읽고 있지도 않게 되었다. 지금은 그냥 서로 가끔 보면 인사하며 지내는 직장동료이다. 아마 그는 나처럼 그때 일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그의 삶을 살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았으니 그저 자신의 삶만을 기억할 수 있을 따름이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통해 뼈 속 깊이 배운 건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스트레스를 대하는 나의 신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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