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을 좀 닫고 살았다. 일은 바쁘게 돌아가고 생각은 많으니 절로 말이 준다. 입을 닫고 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이러고 있으니 들을 수 있는 말이 많아진다. 그동안 어찌 살았나 돌아보니 배운다고 정신없는 삶이었다. 아직 어설프게 배워서 그런지 말은 많아지고 또 길어졌다.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도 있었지만 스스로 입을 열었던 적이 더 많았다.
어떤 말을 많이 했을까? 일일이 다 셈을 하지는 못해도 상당수가 남을 판단하고 단정 짓는 말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뒷머리가 서늘하다. 내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내 기준에 어긋난다고, 내 상식과 다르다고,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쉽게 입을 열고, 쉽게 자로 잰 뒤 여기저기를 잘라내고 내 입맛에 맞춰야 직성이 풀린다.
사람은 진리에 의거해 말하는 존재가 아니다. 상황과 입장에 따라 말을 바꾸는 존재일 뿐이지. 정치하는 인간들보다 농도가 옅을 뿐이지 우리의 삶은 정치성을 배태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 태반이다. 매사 합리를 추구하지만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합리성 한 번 못 가져보고 죽는 게 인간이다. 조금 알면 안다고 젠체하고 모르면 어렵다고 타박한다. 이것도 오래되면 습관이 된다. 남을 재단할 게 아니라 나의 나쁜 습관부터 잘라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이런 것도 모르고 산다. 나쁜 습관은 자기 성찰이라는 도마에 올려놓고 자기 비판이라는 칼로 잘 다듬어야 전체가 썩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앞의 ‘生(생)’이 있다. 그들의 ‘生(생)’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내 생각이나 기준과는 다를지언정 지켜보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머리가 좀 찼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머리에 쌓인 것이 가슴으로 내려갈 때까지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도 내 생각과 같아질 때가 있고, 그들이 나보다 나아질 때도 있다.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 같아도 나를 깨우칠 때가 있다. 나만 알고 나만 깨달을 수 있다는 오만을 밀어내야 한다. 말해줘야 한다는 오지랖도 좀 접어둬야 한다.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것도 내 마음의 크기다. 그러려니 해도 될 것과 그러려니 하면 안 될 것만 잘 구분해도 이 세상 공부 잘한 것이다. 김수영 시인의 시처럼 왜 그렇게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지… 카페 유리창에 비친 나의 반영(反映)이 흐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