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봄이었지만 진짜 숲에서는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이른 듯 겨울을 보낸 낙엽만 발 밑에 수북했다. 숲 해설가가 숲에서 내려오는 길에 “혹시 겨울눈이라고 들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겨울눈’은 수목들이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봄에 싹과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새로운 잠재성을 싸고 있는 주머니라고 한다. 그 속에 잎이 돌돌 말려 있으면 잎눈, 꽃이 돌돌 말려 있으면 꽃눈이라고 부른단다. 그토록 푸르게, 그토록 화사하게 피어날 숲의 주인공을 해방시키기 위해 나무는 잎이 떨어지고, 꽃이 진 자리에 그렇게 새로운 봄을 책임질 겨울눈을 만든다고 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그 잔인함 속에도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해방될 역량은 소리 없이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배우고 또 쌓아가다 보면 우리의 봄, 바로 그때 푸른 잎으로 피어나든, 붉은 꽃으로 피어나든 우리는 실록의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