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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Sep 24. 2019

사람이 잘 되면 다 제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있지만

“내가 받은 감사에 모두 보답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미안하다”

오랜만에 영화를 이틀 연속 봤다. 제목은 “Into the Wild“Wild”. 그간 회사-학교-집을 반복하는 일상 속에 조금의 해방감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는지 별다른 생각 없이 제목에 “Wild”가 들어간 영화를 두 편이나 보게 되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을 떠나 홀로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의 결말은 너무나 다르다(못 보셨음 한 번 보시길…). 다시 한 번 깨달은 점 중 하나는 결국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영화를 보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과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뭐 간단한 일이야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삶은 길고, 살아가며 생기는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일이 복잡해질수록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런 탓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진부한 말의 증거로 우리는 사회에 속해있고 계속해서 조직을 만든다.

'Into the Wild'의 실제 인물 Chris McCandless

한 해의 반이 지나면서 돌아보니 많은 일들이 진행되었고 마무리되었다. 하루하루 해결해야 하는 일상도 있지만 6개월을 준비한 공연기획이나 2년간 받았던 박사 수업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애쓰고 고생했던 일들도 많았다. 돌아보면 결코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애쓰고 도와주었던 분들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석사학위를 마치며 교수님께서 “사람이 잘되면 다 제가 잘해서 잘 된 줄 알고 있지만, 세상일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항상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10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승진자를 대상으로 연수원에서 합숙교육을 하던 어느 날 밤 진행자였던 내 방 옆 교육생 숙소가 소란스러웠다. 가봤더니 후배 두 명이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1년을 조기 승진한 후배가 “부서에서 자기한테 해준 것도 없고, 선배들은 나를 이용하려고만 했다. 내가 승진한 건 100% 나의 노력 덕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옆에 있던 다른 부서의 한 후배가 “그래도 선배들이 도와주고 부서에서 챙겨줘서 승진을 빨리했던 거다.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대충 이런 얘기로 감정싸움이 커진 것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을 올리면서 싸우고 있나 싶어 서둘러 중재를 했지만, 승진을 100%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후배의 앞날이 기대되었다. 사연이야 있었겠지만 그의 순도 높은 공로(100%)를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10년 동안 승진자 교육을 한 덕에 그 후배의 귀추를 볼 수 있었다. 결과는 뭐 반전도 없는 뻔한 얘기가 돼 버렸다.

영화 'Wild'의 한 장면

얼마 전 TV를 돌리다 KBS ‘다큐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했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약방을 하고 있는 신종철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1968년부터 그곳에서 약방을 열어 61년째라고 한다. 약방 앞 느티나무는 200살이고, 약방은 61살, 본인은 87살이라고 소개했다. 느티나무와 약방, 그리고 할아버지가 삼위일체인 느낌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할아버지는 주민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어른이었다. 가난한 신혼부부에게는 주례와 아이의 이름을 작명해주었고, 상급학교에 가는 아이가 학비가 없다고 오면 학비를 주었다. 심지어 회사에 취직하는 청년에겐 신원보증까지 서주었다.  약 사러 오는 횟수만큼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할아버지에게 가지고 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마을의 큰 느티나무 같은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다.

200살의 느티나무와 61살의 청인약방

프로그램 말미에 할아버지가 시신기증 서약서와 6·25 전쟁 때부터 써오던 일기를 기증하고 싶다고 하면서 하신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받은 감사에 모두 보답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작은 시골 약방에서 아낌없이 베풀며 한 평생을 살아온 어른의 말씀이다. 무엇을 더 갚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고민하는 어른의 눈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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