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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Dec 12. 2019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옭아매는 이중 구속 메시지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다 든 세 가지 의문: 1편

맘에 드는 책 사줄게…음…그건 안 되고 이거로 사는 게 어때?


오랜만에 생긴 문화상품권을 꺼내 세어보고 있으니 둘째 아이가 말한다. 솔직히 문화상품권을 보면서 영화를 볼까, 책을 살까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둘째 아이가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폼을 잡으니 무심했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매달 내가 읽을 책만 리스트 해놓고 샀었지 아이들에게 책을 사준지는 꽤 오래되었다.


주말 오후 시내 대형서점을 두 아이와 함께 찾아갔다. 책을 사달라던 아이들은 서점 문이 열리자마자 문구류 코너로 달려갔다. “이럴 거였음, 집 앞에 있는 다O소나 가지 여기까지 뭐 하러 차 타고 온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런 건 안 사줄 거야. 읽고 싶은 책은 사줄게.”라고 했더니, 둘째는 “응, 알겠어. 근데 일단 여길 들러야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 여기 보고 책 보러 갈게~”라며 사라졌다.

 

평소에 사려던 책을 검색하고 읽어보는 사이 아이들이 나타났다. 양손에 책 한 권과 (그렇게 사지 말라고 했던 쓸데없는) 문어대가리(인형), 바나나 필통(필기구는 죄다 1자로 직선인데 이걸 담는 필통이 바나나 모양으로 휘어 있음 어쩌라는 건지...), 색연필(집에 굴러  다니는 낱개만 모아도 몇 다스는 나오는디...)등을 더는 손에 못 쥘 만큼 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가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책은 뭐 골랐어?”

큰 아이는 하이틴 로맨스 에세이를 작은 아이는 만화책을 들고 있었다.

“둘째야, 그건 지난번에도 샀잖아. 근데 또 사?”

“아빠, 그 1편이었고 이건 2편이야. 1편은 벌써 4번이나 읽었어.”


‘아 놔… 좀 더 엘레강스한 걸로 읽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왠지 '나도 이런 류의 메시지를 질리게 듣고 살았지 않나?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고집을 접고 윤허해 주기로 했다. (원래 책은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골라야 잘 읽힌다. 책꽂이에 꽂혀 읽지 않은 책은 죄다 남들이 선물해준 책들. 그동안 책 주신 분들께 죄송요^^)


집에 돌아와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할 때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찾아봤다. * ‘더블 바인드(double bind)’, 우리말로 하면 ‘이중 구속’ 이론이라고 했다. 이중 구속 이론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1904~1980)이 1950년대 조현증(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를 하며 제시한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두 개의 올가미 같은 메시지를 던져서 상대를 꼼짝할 수 없는 정신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협상이나 영업 스킬로도 쓰인다.

우리는 이런 이중 구속의 메시지를 은연중에 자주 듣거나 하면서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딸과 함께 옷을 사러 가서 “맘에 드는 옷 사줄게, 골라봐.”라고 말하고선, 딸이 옷을 골라오면 “아냐, 그 옷은 너한테 안 어울리잖아. 이거 입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 연세든 부모님께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 괜히 돈 들여서 사 오지 마라”라고 하시고는 정말 아무것도 안 사 가거나, 소소하게 해 가면 “자식 낳아봤자 소용없다”라고 하는 경우도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회사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선배나 상사가 “편하게 일해”라고 해놓고 엄하고 까다롭게 군다거나,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짜장면!” 이런 경우다. 폭을 좀 더 넓히면,  아이디어를 내라고 해서 정작 아이디어를 내면, “김 대리, 그거 아이디어 낸 김에 김 대리가 해보자.” 이런 것도 해당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은 이런 메시지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정신분열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모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제약된 상황에서 모순된 메시지를 계속 듣게 되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사고나 정서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일 때 그렇지만, 아이들의 민감도에 따라 경도로 노출되더라도 무기력증과 의존적인 경향을 보이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중 구속의 메시지를 하는 이유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적인 갈등(예; 아이를 내 맘에 들게 입히고 키우고 싶은, 받고 싶은 게 있지만 대놓고 말하긴 체면을 의식하는 경우)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경우(애들이 뭘 알겠어, 부서원도 나랑 의견이 같을 거야)나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된 우리도 평소 이런 메시지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랑비처럼 맞은 이런 메시지어 우리도 누군가에게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내 마음속에 갈등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를 생각하는 시간을 하루에 10분이라도 쓰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 상담학 사전(학지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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