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Influence Dec 13. 2019

만화책 사주는 건 잘하는 일인가요?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다 든 세 가지 의문 2편

[1편에 이 연재되는 글입니다] 1편 읽기  3편 읽기


“둘째 아이가 고른 만화책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하면 만화책만 찾고, 좋아하는 걸 보면서 내심 “뭐라도 읽으면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만화책만 읽다가 일반적인 책은 못 읽는 게 아닌가? 만화책이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만화책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은 정신과 의사였던 웨덤(Wertham)이 『순수의 유혹』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화의 악영향을 지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다. 그 결과로 만화책을 평가하는 코믹 코드가 만들어졌고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었다고 하죠. 이로 인해 만화책이 지겹고 반복적인 이야기만 하는 수준 낮은 책으로 전락했다고 한 만화책 학자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홀트(Hoult)나 위티(Witty)의 연구에 의해 만화책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위티는 4~6학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화책 가장 많이 읽는 10%와 가장 적게 읽는 10%의 학생을 비교한 결과 두 집단은 평균 성적과 학교생활, 품행 등에서 큰 차이가 없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학생이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교육심리학자인 손다이크(R. L. Thorndike;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동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E. Thorndike의 아들)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어휘 확장에 만화책이 도움이 되므로 만화책을 하찮은 존재로 보면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만화책 한 편당 담긴 단어는 평균 2000개 정도로 하루에 만화책 한 권을 읽으면 중산층 어린이들이 한 해 평균 읽는 독서의 반에 해당되는 50만 단어를 넘게 읽을 수 있다고 합다.


“만화책을 많이 읽으면 다른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스퍼즐(Sperzl)은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15주간 실행한 연구에서 만화책을 읽게 한 그룹과 다른 읽을거리를 읽게 한 그룹 간의 어휘력과 독해력에서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아린(Arlin)과 로스(Roth)의 연구에서도 만화책은 아이들의 독해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두 연구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만화책도 고전 만화책이었지만 적어도 다른 책을 읽는 것만큼은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화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가벼운 독서습관을 통해 어려운 것도 읽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해이스(Hayes)와 아렌스(Ahrens)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만화책이 어려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 연구에서 구두 언어와 쓰기 언어를 9개의 단계로 나누고 흔하게 쓰는 쉬운 어휘와 흔하지 않은 어려운 어휘가 나타나는 비율을 조사했습니다. 만화책에는 최고 시청률 시간대에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이나 어른들의 대화보다 어려운 어휘가 많이 나타났고, 책이나 잡지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가장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학술지 논문 초록이었습니다.)


만화책은 외국어를 학습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 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 주교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읽도록 해 준 만화책으로 인해 영어와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 중학생 시절에는 『슬램 덩크』,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등의 일본 만화책이 유행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말 번역본을 돌려보았지만 중에 몇몇은 일본어로 된 원서를 보는 아이들도 있었. 그 친구들은 일본 만화책을 보려고 일본어를 공부했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의미를 유추하거나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다 보니 유창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들은 일본 패션 잡지 『non-no』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성인 잡지까지 섭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만화책만으로 아이들의 논리와 어휘력, 독해력 수준을 최상급까지 높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화책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열어 보게 하는 촉진제가 되고 중상위 단계까지는 어휘력과 언어발달을 이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독서량 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임을 감안했을 때, 만화책을 많이 읽는 독자들은 적어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책을 고 일반 책을 읽는 사람들만큼 독서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화책도 책입니다.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은 ‘유O브’ 영상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책이든 내가 보고 읽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 자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으니 말입니다. 만화책의 장점을 잘 알고 용하면 이 또한 배움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으니 괜한 불안감은 접어두고 주머니에 든 달콤한 사탕처럼 잘 활용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옳아매는 이중 구속 메시지

아이가 하이틴 로맨스를 읽는건 괜찮을까?



<참고문헌>

Arlin, M., & G. Roth. (1978). Pupil’s use of time while reading comics and books.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Journal, 5, 201-216.

Hayes, D., & M. Ahrens. (1988). Vocabulary simplification for children: A special case of “motherese”? Journal of Children Language, 15, 395-410.

Hoult, T. (1949). Comic books and juvenile delinquency. Sociology and Social Research, 33, 279-284.

Krashen, S. D. (2004). The Power of Reading. Santa Barbara, CA: Libraries Unlimited.

Sperzl, E. (1948). The effect of comic books on vocabulary growth and reading comprehension. Elementary English, 25, 109-113.

Thorndike, R. (1941). Words and the comics. Journal of Experimental Education, 10, 110-113.

Wertham, F. (1954). Seduction of the innocent. New York, NY: Rinehart.

Witty, P. (1941). Reading the comics: A comparative study. Journal of Experimental Education, 10, 105-109.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을 옭아매는 이중 구속 메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