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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Sep 24. 2019

소설을 읽자

"가을이라고 이러는 건 아니고"

얼마 전부터였을 것이다. 읽던 책을 정리했다. 실용서라고 불리던 책 읽기를 중단하고 소설만 읽었다. 평소에도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예 이렇게 책 읽기에 편식을 한 적은 없었다. 아마 어수선한 주변 사정에 현실보다는 이상적인, 아니 허구적인 공간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것에서조차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의도적 행위를 할 마음의 풍요가 남아 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소설 읽기에 힘쓰고 있을 때 즈음해서 좋아하던 작가들도 신작을 발표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조정래의 『천 년의 질문』, 장강명의 『산 자들』을 찾아 서점으로 갔더니, 그 옆으로 줄지어 꽂혀 있는 문학 소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비딕』, 『버마 시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대성당』… 덕분에 책 읽기의 편식은 정서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런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도 공존한다. 책 읽기의 편식이 계속되면 쌓이는 지식도 편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소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소설이 지식의 편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지식을 선사하며 정서적 풍요까지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갖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넣어 만든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있는 느낌이다.

어릴 적 학교 선생님께서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2~3권 정도 읽는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너 소설책만 읽지? 소설은 큰 도움이 안 되니까 다른 책을 읽어봐라”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소설에서도 배우는 게 많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삐죽거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금도 소설을 통해 학교 공부로는 충족되지 않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전라도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빅픽쳐』를 읽으며 사진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2013년 미국 에모리대 신경연구센터의 그레고리 번즈(Gregory S. Berns) 교수는 국제 학술지 ‘Brain Connectivity’에 소설이 뇌 연결성에 미치는 단기, 장기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레고리 번즈 교수와 연구진은 대학생 12명을 대상으로 첫 번째 5일은 뇌가 휴식을 취하는 상태에서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를 촬영했다. (fMRI의 원리는 뇌의 특정 부위가 작동하면 그 부위로 피가 이동하게 되어 영상에서 불이 켜지는 것처럼 밝아지게 된다.) 그런 후 다음 실험으로 소설책 『폼페이』(로버트 해리슨 저)를 매일 저녁 30페이지씩 읽게 하였다. 다음 날 아침 대학생들은 fMRI 촬영을 하였고, 이 과정을 9일간 반복하게 하였다. 마지막 실험은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5일 동안 아침마다 뇌를 촬영하였다. 

Short- and long-term effects of a novel on connectivity in the brain. Brain Connectivity, 3(6), 591.

이 연구를 통해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 뇌신경 회로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관장하는 좌측 피질에서 신경회로의 연결이 활성화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런 결과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fMRI를 촬영하는 때에는 책을 읽지 않았고, 이런 뇌의 변화는 소설을 읽지 않은 마지막 5일까지 그대로 이어졌다는데 놀라움이 있다. 마치 운동으로 익힌 기능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에 남아 있듯이 소설을 읽으며 생겼던 신경회로의 연결이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들은 문학성이 풍부한 소설을 읽으면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음을 밝혔다.


Short- and long-term effects of a novel on connectivity in the brain. Brain Connectivity, 3(6), 593.

같은 해 10월 하버드대 데이비드 키드(David C. Kidd)와 에마누엘 카스타노(Emanuele Castano)는 국제 학술지 ‘Science’에 ‘Reading Literary Fiction Improves Theory of Mind’** 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결론은 문학성이 높은 소설을 읽으면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학성이 높은 소설과 대중소설, 비소설을 읽고 나서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공감능력(마음이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각자 한 가지 장르의 책을 읽고 테스트에 임했다.  테스트는 눈만 나온 사진을 보고 사진의 인물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결과는 문학성이 높게 평가된 소설을 읽은 사람의 인지와 정서 능력이 가장 높게 측정되었다. 반면, 대중소설이나 비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인지 및 정서 능력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그 원인에 대해 “대중소설은 인물을 평면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묘사하지만, 문학성이 높은 소설에는 현실처럼 속 사정을 알기 어려운 복잡한 인물들로 배치하고, 문장이나 문법에서도 독창적인 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학성이 높은 소설을 읽을 때는 고도의 집중력과 창조적인 사고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변이 산만하거나 쪽 시간을 이용해 문학, 특히 고전문학을 읽으면 내용에 빠져들지 못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연구는 문학성이 풍부한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을 많이 하면 보통 때는 알 수 없었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을 밝혀낸 흥미로운 연구이다.

이제 더위도 한 걸음 물러나며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모처럼 맞는 선선한 주말 아침 베란다 창을 열고 따뜻한 커피와 함께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권해보고 싶다. 날씨가 화창해서 산책을 할 때라면 옆에 문학 소설 한 권 끼고 나가 벤치에 앉아 갓 찾아온 가을을 만끽하며 공감능력을 키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올해도 벌써 반하고도 한 달이 지나갔다. 더 늦기 전에 독서하는 한 해, 소설 읽는 한 해로 삼는다면 연말에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Berns, S. G., Blaine, K., Prietula, J. M., & Pye, E. B. (2013). Short- and long-term effects of a novel on connectivity in the brain. Brain Connectivity, 3(6), 590-600.

** Kidd, C. D., & Castano, E. (2013). Reading literary fiction improves theory of mind. Science, 342(6156), 37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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