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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Feb 14. 2020

회사가 나의 경력을 책임지는 시대는 지났다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기업 조직들은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삶에 대해 지속적인 이야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직장인들은 그들이 속한 조직 안에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로 인해 ‘조직은 곧 나’라는 공식이 성립되었습니다. 조직은 개인의 삶의 대본을 써주고 그대로만 이행하면 평생의 일터를 보장했습니다. 대다수의 기업 구성원의 꿈은 조직 내에서 팀장, 부장, 임원으로 수직 상승하는 것이었고, 조직은 주어진 대본을 잘 수행하는 이에게 이런 보상을 해줬습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미 IMF 때 기업 중심의 사회적 안전망이 해체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직업 세계는 점차 안갯속으로 진입해 현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졌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직업 세계의 변화는 자연이 변화하는 것에 은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땅을 밟고 예측 가능한 날씨와 비교적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았다면, 이제는 흔들리는 땅을 딛고 예측 불가한 기후와 경계가 희미해진 계절처럼 직업의 세계도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업 세계는 고용안정성 중심에서 고용가능성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조직에서 주어지는 이야기로 살아가는 시대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직업의 세계에 존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 조직 안에서 주어진 대본에 의해 사는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이 자신의 직책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모두가 비닐하우스 같은 조직에서 벗어나야 하는데도 말이죠. 하긴 이제 많은 기업들이 직급을 없애거나 간소화하고 수평적 조직을 만든다고 해서 그마저도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은 조직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21세기는 ‘무한히 변화하고’, ‘경계가 없는’ 경력의 시대입니다. 남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변화하고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세상에 중심을 두고 자신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돌리는 태도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성공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 정한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중요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는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경력과 성공을 정의하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의 말씀처럼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정이 그렇게도 먼 법입니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보면, 서울에서 제약회사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윤희중은 고향인 무진에 내려와 동창과의 모임에서 음악 선생 하인숙을 만나게 됩니다. 서울에서 음대를 졸업했다는 하인숙은 졸업발표회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세무서 무리들의 요구에 ‘목포의 눈물’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장르로 부르고 맙니다. ‘어떤 개인 날’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어떤 개인 날에는 임이 찾아온다고 믿으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하인숙은 무진을 떠나고 싶지만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누군가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바라며 다른 남자들에게 매달리는 인물입니다. 윤희중은 조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며 흐린 날에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고 하인숙과 잠자리 후 서울로 떠나버립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현재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지이 다케시 실장은 “누군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을 깨달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그의 논리를 직장인인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가 조직에 헛된 희망 또는 조직의 무능을 탓하고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가 유능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자신의 경력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성장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 때 성장의 발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일본 동경대 경제학부 이토 모토시게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일하다’의 의미를 노동(labor), 작업(work), 플레이(play)로 구분합니다. 노동(labor)은 육체를 써서 하는 일을 말하는데,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육체노동을 하였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점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며 두 번째 의미인 작업(work)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은 기계를 조작하고 사무실에 앉아 사무를 보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맡은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술혁신과 글로벌,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현재는 플레이(play)로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전문성과 콘텐츠를 가진 사람입니다.

 

대기업이 고용을 보장해 주던 작업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속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얼마나 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초기 경력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이려고 애를 씁니다. 가치는 곧 숫자로 환원됩니다. 이때 비교 우위에 있는 가치들은 생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숫자는 제외될 뿐입니다. 가치 있는 플레이어는 조직 속이든, 밖이든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토 교수는 조직에서나 시장에서나 플레이어가 아닌 작업자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작업자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조직은 절대로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조직 안에 있다고 하인숙처럼 현실을 외면하고 헛된 희망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면,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커피가 식으면 혹은 커피를 다 마시면 우리 자신도 그들과 같이 카페를 나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참고문헌]

김승옥(1964). 무진기행. 문학동네.

신영복(2016). 처음처럼. 돌베개.

이토 모토시게(2015). 도쿄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주는 쓴소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줄 독한 충고. 갤리온.

후지이 다케시(2015). 세상읽기: 흐린 날엔. 한겨례신문

Savickas. M. L.(2016). 커리어 카운슬링. 김봉환, 김소연, 정희숙 역.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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