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작가님이 선물해 준 <작가의 루틴>을 읽고 있다. 김중혁, 박솔뫼, 범유진, 조예은, 조해진, 천선란, 최진영 작가가 함께 쓴 책으로, '작가의 하루 루틴'을 주제로 쓴 글이 모여있다. 글 잘 쓰는 사람들 루틴을 따라 하면 글이 좀 써질까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독서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루에 한 꼭지, 한 작가의 글을 읽는데 빨리 다음 글을 읽고 싶어서 어서 내일이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오늘 읽은 조예은 작가의 글은 밑줄도 많이 긋고 메모까지 하며 읽었다. 심지어 '와 진짜 글 잘 쓴다!'라고 감탄의 말을 썼으며, 글을 읽다 참지 못하고 그가 누구인지 교보문고에 들어가 검색까지 했다.
책장을 덮었는데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 얼마 만에 글을 읽고 느끼는 두근거림과 기쁨과 경탄인가! 아니군, 이 책의 첫 꼭지인 김중혁 작가의 글을 읽고도 살짝 감탄했다. 어쨌든 이건 생각해 볼 문제이므로 곰곰이 생각했다. 내 기분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왜 책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나. 아니다. 책을 읽었다고 기분이 좋아진 게 아니라, 좋은 글을 읽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글은 뭐지? 걸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담백하고 꾸밈없는 문장이 좋다. 그렇다고 수사법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꾸민 문장은 대번에 표가 난다. 멋져 보이고 싶어 화려하게 꾸민 문장보다,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살아있는 진솔한 문장이 좋다. 한글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함축성이다.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낸, 그래서 꼭 필요한 어휘만 존재하는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간결함 속에 얼마나 많은 사색이 들어있는가! 작가의 고뇌와 편집자의 날카로운 펜 끝에서 살아남아 내 앞에 놓인 단순 명료한 문장들을 보면, 나는 깊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긴 여정 끝에 살아남은 문장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모여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되는 구성을 좋아한다. 같은 경험을 해도, 화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의 생각에 따라 이리저리 편집되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강조되기도, 다른 부분은 생략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시선과 생각이 보이므로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탐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를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 '어랏! 분명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허를 찌르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지닌 의미를 인식조차 못한 채 흘려보낼 때, 흔하디 흔한 장면을 끌고 와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말이다. 혹은 글의 메시지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소재를 끌고 와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런 사람은 이야기가 지닌 힘을 안다. 이야기는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듣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끄덕 설득당하고 만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야기도 이야기 나름이다.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소 야인, 아웃사이더 기질을 타고났는데 그래서인지 살짝 비틀린 감성을 좋아한다. 대놓고 웃긴 글도 좋지만, 세상을 약간 비틀어 보는 눈, 은은한 똘끼, 아주 살짝 웃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간 글이 재밌다.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을 때마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그 끝에 '그래, 나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라고 머릿속이 정리됐다. 상쾌한 기분으로 달려와 샤워를 하는데, 묘하게 찜찜했다. 머리를 두드리는 물줄기가 조금 더 생각을 이어 보라며 다그치는 듯했다. 단지 좋아하는 류의 글을 만나 기뻤던 걸까?
그렇다. 아침에 느낀 기분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멋진 작품을 만났을 때 오는 환희.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장과 좋은 글의 조건에 딱 맞는 글을 만났을 때 오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인가?
아니다. 내 기분의 이유가 단지 그것이라면, 나는 매일 환희에 차 있어야 했다. 내가 매일 보는 오글오글 멤버들의 글 중에도 감탄스러운 글, 내가 좋아하는 글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때는 아니고, 지금은 맞는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내 기분의 근원이 명료해졌다. 그 두근거림과 기쁨과 경탄은 자유에서 온 것이었다. 편집자가 아닌 독자로서 글을 마주했을 때 오는 감정이었다. 이 글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것은 잘 전달되었는지, 기승전결은 잘 드러나는지, 맞춤법은 맞는지, 비문은 없는지, 더 정확한 어휘는 없는지, 윤문이 필요한지 등등... 생각만으로도 머리 아파지는 그 모든 기준을 내려놓았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편집자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활자 속을 유영했더니 다시 찾은 감각.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낀 독서의 즐거움인지!
그렇다. 드디어 시원하게 결론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