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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May 25. 2024

무엇을 더 후회할까?

<리셋, 다시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를 읽고

16년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강박을 오래 안고 있던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던 휴식의 시간이 주어져도 온전히 휴식을 즐기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처음엔 며칠 푹 쉬는 것 같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곧 불안해진다. 쉬는 것에 대한 내적 저항 때문이다. 

<리셋, 다시 나로 살고 싶은 당신에게>



아침 6시에 기상했다. 책을 읽고 인증샷을 찍어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다. 글감을 찾아 글도 한 편 쓰고 블로그와 카페, 브런치에 차례로 옮겼다. 뿌듯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부엌에 가 핸드 믹서에 바나나와 오트밀 음료를 넣고 갈았다. 윙- 조그만 칼날이 열심히 돌며 바나나 주스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요거트와 그래놀라, 블루베리, 딸기를 조합해 아침 식사를 완성했다. 평소라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여행 유튜브 채널을 보며 여유 있게 식사를 할 텐데 오늘은 조금 서둘렀다. 우체국에 가 서평단 책을 붙이고, 병원에 가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오랜만에 차를 몰아 우체국에 갔다. 평일 낮인데 사람들이 많았다. 택배 상자를 꺼내 꼼꼼하게 포장하는데, 옆에 있는 중년 부부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아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 부부는 쉴 새 없이 틱틱 거리며 책을 포장하고 있었다. 중년 부부는 원래 서로에게 화가 나 있나? 궁금해하며 부모님 생각을 잠시 했다. 



다음 목적지는 병원. 그런데 병원 지하 주차장을 목적지로 하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숨 쉴 때도, 웃을 때도, 걸을 때도 아프지만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주차하기로 했다. 마른 모래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터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살살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 옆구리에 쿵쿵 통증이 왔다. 



월요일에 늑골 골절 진단을 받았다. 지난주에 운동하다 옆구리를 부딪혔는데 통증에 둔감한 나는 단순 근육통인 줄 알고 계속 운동을 했다. 폴 댄스, 요가, 등산까지 야무지게 했다. 그러다 일요일에 숨쉬기도 힘든 상태가 되고서야, 뼈에 이상에 생겼구나 자각했다.



늑골 골절은 깁스도 못하고, 진통제 먹으며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햇빛이라도 쐬야지 기운이 날 것 같아 일부러 병원 밖에 주차하고 살금거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물리 치료만 받는 날이라 대기 시간도 없었고, 치료 중에 깜빡 잠이 들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병원에서 나오니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하늘은 맑았다. 



병원 맞은편 샐러드 가게 창가 자리가 비어있는데, 해가 잘 들었다. 저기 앉아서 소처럼 풀을 되새김질하며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어 볼까 생각했다. 가만히 서서 고민하다 집에 가서 편히 있자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햇빛을 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고 싶었다.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차 앞에 와서는 결국 몸을 돌려 공원으로 향했다.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콕콕 찌르는 통증과 조금씩 스며나오는 땀을 느끼며 적당히 그늘진 벤치에 앉았다. 저녁 식사 후 먹으려고 사둔 생크림 단팥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 마시며 호수를 바라봤다. 



'5월의 나무와 하늘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렇게 멋진 풍경을 원 없이 볼 수 있는데, 왜 놓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분명 쉬고 싶어서 휴직했는데, 제대로 쉰 적이 있나 싶었다. 얼마 전 여행 갔을 때 말고는 머릿속이 게운한적이 별로 없었다. 언제나 머릿속은 '매 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이 햇살을 누리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평일 낮의 고운 햇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쓸모가 무슨 상관일까. 나뭇잎은 푸르고 분수는 하늘로 치솟아 머릿속 상념을 몰아내는데.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 관찰하며 공상이나 펼치면 딱 좋은 순간인 것을.



그늘이 사라져 허벅지가 뜨거워질 때까지 앉아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올 해를 어떻게 기억할까?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할까, 아니면 '더 열심히 놀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할까. 미래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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