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16년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천천히 책을 읽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천천히 마을을 산책하고 나서 내가 일상에서 일종의 정신적 시차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도둑맞은 집중력>
"그냥 콩나물국밥 먹자. 먹고 나면 분명 후회하겠지만, 메뉴 고르느라 시간 가는 건 더 싫다."
숙취로 부대끼는 속을 달래고 싶다 말했지만, 1시간째 식사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신랑이 반차를 쓰고 데이트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평일 낮 데이트니 기억에 남을 식사를 하고 싶었다. 물론 데이트를 하려고 반차를 쓴 건 아니다. 차 수리를 하려고 반차를 쓴 김에 데이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신랑이 차를 맡기면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 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내가 AS 센터까지 데리러 가겠노라 말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만난 뒤부터가 어수선했다. 점심 메뉴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여름휴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결국 점심 메뉴를 정하지 못했다.
'걷다 보면 먹고 싶은 게 있겠지'라며 손을 잡고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각자 핸드폰에 코를 박고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게의 메뉴와 리뷰를 서로에게 브리핑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으니까, 더 빨리 더 멋진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결국 참을성 많은 신랑이 '내키지 않지만 콩나물국밥 먹자'라고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같이 있을 때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각자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그게 서운하게 생각돼서 "뭐해요?" 물어보면, 생각 없이 릴스를 보거나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다. 차량 수리 보험료를 저렴하게 하는 방법을 알아보거나, 여름휴가지를 찾아보고, 당장 주말에 여행 갈 곳을 찾아보는 식이다. 모두 필요한 것들이라 딱히 문제랄 것 없으니, 점점 서로의 얼굴보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 갔다.
같이 있는 시간에는 서로의 눈이 아닌 핸드폰을 본다. 그런데 떨어져 있을 때는 보고 싶어 안달인 게 아이러니다. 출근 시간이면 우리는 다시는 못 볼 사이처럼 애처로운 얼굴이 된다. 포옹하고 서로의 냄새를 킁킁 맡으며 '아, 힐링 된다' 말하고, 입술에 뽀뽀를 쪽하며 '잘 다녀와요. 안녕, 안녕, 진짜 안녕' 손 흔드는 걸 반복한다. 그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야 현관문이 닫힌다. 틈날 때마다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라는 카톡을 날리며 세상 애틋한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만나면 왜 그럴까?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며 정보의 과잉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끊임없이 쏟아지는 멋진 것들의 향연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멋진 것들이 넘쳐나는데, 나만 누리고 있지 못한 건 아닐까,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점심 메뉴 하나 고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떠올렸다. 휴가지를 결정하고도 남들이 다 가는 뻔한 곳 같아서, 남다르고 독특한 곳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검색만 하고 있는 우리를 보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보다, 더 좋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소중한 사람에게서는 눈을 멀리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같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진대, 그저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진짜 눈에 담은 것은 남들의 이야기였다.
평일 반차로 생긴 소중한 시간에, 내키지 않는 해장용 콩나물국밥을 먹진 않았다. 그렇다고 근사한 메뉴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워,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만족스러운 메뉴는 아니었지만, 눈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 감사했다.
손을 잡고 평소 안 가던 길을 걸으며 날씨에 대해 얘기했다. 요즘 내가 누리고 있는 평일 낮의 햇살과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내가 봤던 아름다운 풍경을 전해줬다. 그리고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걸으며 평일 낮을 누리는 감탄을 서로 나눴다.
사거리 모퉁이,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발견하고 자리를 잡았다. 마주 보는 자리가 아니라 나란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둘 사이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카페모카, 휘낭시에가 놓였다. 서로의 눈은 보지 않았다. 맞은편 원룸 2층에서 진중하게 창틀을 닦는 20대 청년을 봤고, 대각선에 위치한 카페에 '아침마다 까치가 찾아오는 디저트 맛집'이라는 현수막을 보며, '우리 집은 비둘기 맛집인데, 아침마다 창틀에 비둘기 오잖아'라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했다.
한참을 앉아 커피를 마시고, 휘낭시에를 한 입씩 나눠 먹었다. 천천히 마시며 커피의 산미를 측정하고, 천천히 씹으며 휘낭시에의 적당한 식감은 무엇인지 얘기 나눴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좋지만 젊은 부부 사장님의 가정 경제가 걱정됐고, 그럼에도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게 부럽다며 이야기했다. 테라스에 앉아 한때를 누리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커플이 옆 테이블에 앉았을 땐, 목소리를 더 낮춰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 눈을 마주 보지 않는데, 서로가 마음에 들어왔다. 같은 시간을 느끼고 있다는 충만감이 들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꿀렁꿀렁 무언가가 흘렀다. 이게 뭐지? 아, 맞다. 평온함이었지. 내가 한 것이라곤 핸드폰을 잠시 덮어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천천히 음미한 것뿐이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빠른 속도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과 풍경에 집중했더니 마음이 잔잔해졌다. 평일 낮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휴직기간 동안 무언가 이뤄 보겠다고 소방 호스로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이 쏟아져서 모든 것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외부 입력 단자를 잠시 막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만 받아들이는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넘쳐나는 정보에 바짝 세워진 비교와 좌절의 안테나를 접고, 내가 선택한 속도로 살고 싶다. 그러려면 핸드폰 대신 그의 손을 잡는 시간을 늘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