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고
16년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몇 년 전에도 완전히 에너지가 소진되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발적 백수가 됐던 경험이 있다. 푹 쉬면서 충전할 생각이었는데 충전이 잘 안 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낭비라 생각했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뭘 했냐고? 고민했다. 그 긴 시간을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 채웠다. 그것을 노력이라 착각하면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멍하니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아래 글이 적힌 사진을 봤다.
공부는 잘하고 싶은데 스마트폰은 할래요.
= 살 빼고 싶은데 피자, 치킨은 매일 먹을래요.
= 건강해지고 싶은데 매일 초콜릿, 과자 먹을래요.
= 성공하고 싶은데 매일 유튜브만 볼래요.
= 돈 많이 벌고 싶은데 계속 놀래요.
(출처: 인스타그램 @uz_zzzz)
뭐지?
누가 내 얘기 써놨지?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휴직자가 되어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요즘,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계속 놀고 싶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 꿈이 돈 많은 백수라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휴직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하고 싶은 일만 하는 하루를 보내봤다.
(돈 걱정 없는 백수를 흉내 내 본 하루라고나 할까)
아침 독서
오전 폴 댄스 하기 (가장 행복한 시간)
맛난 혼밥 외식 (평소 외식에 돈 쓰는 거 아까워함)
평일 낮에 네일, 패디 받기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
읽고 싶은 책 실컷 읽다가 낮잠 자기 (아웃풋 생각 없이 읽기만 하고 싶었음)
이런 하루를 보낸 이유?
15년 동안 쉼 없이 일하고, 자기 계발에 매진하면서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평일 낮에 운동하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평일 낮에 머리 하고, 피부과 다니고
네일, 패디 받으러 다니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평일 낮에 커피숍, 맛집에 앉아있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물론 교사들에게도 평일 낮이 허락될 때가 있다.
시험기간에 아이들이 일찍 하교를 하면
짬을 내어 동료 교사들끼리 인근 맛집에 갈 때가 있다.
분명 평일 낮인데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사람들도 시험기간에 잠깐 밥 먹으러 나온 교사일 거야.'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평일 낮에 이런 좋은 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의 오늘이 부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러했으면 좋겠다만-)
하지만 이렇게 버킷리스트를 써가며 애쓰지 않으면
쉬지 못하고 마음 졸이며,
이일 저 일 벌이고 있는 사람이니 부러워 마시길.
나는 아직도 헷갈릴 때가 있다.
여러 검사와 자가 테스트를 해봐도
배움, 성장, 인정 욕구가 나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 욕구가 채워질 때 행복하다.
그래서일까?
쉬고 싶어서 자발적 백수가 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해서
매일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는 나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가 생각한다.
가끔은 이것이 포모 증후군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심각한 두려움
또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감을 말한다.)
심각한 경쟁 사회다.
SNS로 인해 비교 지옥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다.
나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누리지 못하는 것을
타인은 쉽게 누리는 것 같아 힘이 빠진다.
남들은 흔들림 없이 우직하게 갈 길을 가고
그렇게 가다가 결국 꿈을 이루는 것 같다.
나만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나만 매일 흔들리고,
나만 매일 고된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오글오글 교사 모임에서
비교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생활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면서
토요일 새벽 6시에 성장 모임, 독서 모임을 하고
일주일에 글 3개를 쓰는 미션을 수행하며,
개인 독서에 공저 원고까지 써내는!
누가 봐도 갓생 사는 교사들임에도
더더더 갓생 사는 교사들을 보니
힘이 부칠 때가 있다는 솔직한 얘기들이었다.
겨우겨우 따라가거나,
진즉에 포기하고 내 갈 길을 간다는 말도 나왔다.
다른 글쓰기 모임에서도 비교 얘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점점 다른 이들의 글과 비교하면서
글쓰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솔직한 이야기들이 좋다.
나만 힘들 순 없어!! 같은 마음은 절대 아니다.
혼자 고민했던 것들이
공동의 고민이 되면서
우리 함께 느리게 가자.
우리 함께 각자의 속도로 가자.
마음먹는 과정이 좋다.
그리고 과정 공유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다.
매일 좋은 모습만, 좋은 결과만 짜잔~! 하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면
좋은 결과를 부러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공감하고 응원하게 되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잠시 휴업! 을 택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큼은 어떤 성과도, 결과물도 생산해 내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랬더니 나의 절친 무기력님이,
'잠시나마 함께 해 즐거웠다'며 손 흔들고 떠났다.
(물론 조만간 또 나를 찾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또 하나의 생산물(?)이 나왔다.
의미 따위 그만 찾으려고 했는데
또 의미를 찾아버린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련다.
미뤘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공정, 경쟁 사회, SNS, 비교, 도둑맞은 집중력...
깊이 들어가면 해야 할 말이 많은 주제에요.
하지만 오랜 세월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며 살았더니
요즘은 한 없이 가볍고만 싶답니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였는데요.
심오함이나 깊이가 없음에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ㅎ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