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16년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작가이며 동물보호운동가인 루스 해리슨이 1964년에 발표한 고전 <동물 기계>는 공장식 축산과 그 안에 놓인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시민들의 인식을 바꿨으며, 영국의 동물복지 연구와 관련 제도가 생겨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pesco는 스페인어로 생선, 낚시 등을 뜻한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해산물까지 섭취하는 준 채식주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나는 엄청난 육식주의자였다. 날이 좋든, 좋지 않든 모든 것을 이유로 술과 육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평화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서부터.
그때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영혜의 입장에 강하게 몰입했다. 자신의 손, 발, 이빨, 혀, 시선. 그 모든 것이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젖가슴만은 아무것도 죽일 수 없다는 말이 마음을 휘저었다. 여기서 젖가슴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생명을 키워내고 살리는 힘으로 읽었다. 폭력, 죽음과 반대되는 의미다.
그즈음 공저 작업을 하면서 ‘채식주의’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됐다. 운명 같은 일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동물권 관련 책들을 산처럼 쌓아두고 읽었다. 그리고 이미 존재했지만, 숨겨져 있던 존재들의 삶을 알게 됐다. 매일 밤낮으로 울면서 글을 썼다. 먹을 수 없는 것이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채식지향의 삶을 살게 됐다. 의식적으로 노력한 건 아니었다. 몸이 받아주지 않았다.
책은 그렇게 내 삶을 바꿨다. 책을 읽으면 삶이 변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책을 읽으면 삶이 변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자기를 가꾸게 되고, 에세이를 읽으면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게 되고, 경제경영서를 읽으면 자산을 관리하게 되고, 철학 책을 읽으면 삶을 성찰하게 된다.
<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채식지향의 삶을 살게 됐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책에서 보았던 많은 존재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책은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오랜 세월 비인간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시대가 흐르면서 관계의 균형이 어떻게 깨졌는지 다양한 사례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는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새로운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의 삶과 세계가 조금씩 변화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