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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Aug 21. 2024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정리하며

<기버>를 읽고

16년 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눈을 뜨자마자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정리했다. 제공받은데로 써도 될 테지만, 성격상 내 스타일에 맞게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한다.


먼저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은 리스트를 구글시트에 옮겼다. 그리고 단순 반복 작업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오디오북을 틀었다. 오디오북 제목은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정리하며 출판사 차리는 법을 읽는 이유?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는 것보다, 내 글을 받아줄 곳을 찾는 것이 몇 배로 힘들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1인 출판사의 꿈은 멀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출판사를 차리는 일도, 리스트를 정리하는 일도 시작이 막막해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300개가량 되는 출판사 이름 앞에 붙은 숫자를 일일이 지우고, 출판사 이름 뒤에 붙은 이메일을 잘라내 다른 셀에 붙여 넣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메일 뒤에 적힌 '검토, 거절, 계약' 등 리스트를 건네준 분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삭제하고 이메일만 남겼다.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이제 1차 투고 리스트 200여 개와 겹치는 것이 없는지 중복 검사를 해야 한다.


중복 검사 후에도 다양한 작업을 했다. 30분이면 끝날까 했던 작업이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정리된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오글오글 단톡방에 공유하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제 남은 것은 공저자들이 자신이 맡은 출판사의 홈페이지, 주력 분야, 신간 도서를 추가 정리한 후 투고하는 일이다. 어쨌든 2차 투고 전 준비 작업은 끝났다. 힘들다.



성공을 성취하는 비결은
주고, 주고, 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는 것의 비결은 기꺼이 받는 것이다.

<기버>



마냥 힘들었던 건 아니다. 신기하게도 작업이 마무리된 후 기분이 좋았다. 지리한 작업이 끝나서 오는 성취감은 아니었다. 이렇게 정리해 두면 오글오글 회원이 개인 투고를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요즘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느껴지는 감정.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 15년 동안 도덕윤리 교사로 살면서, 타인을 위해 나누고 베푸는 행동이 나의 행복으로 연결됨을 지독히도 가르쳐 왔건만, 이제야 실감했다.


나도 두 분으로부터 아무 대가 없이 출판사 투고 리스트를 받았다. 정말 아무 대가 없이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감사히 받았다.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분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을 기꺼이 받으면 됐다. 그리고 그분들의 선의가 다른 이에게 갈 수 있도록 나 또한 누군가를 도우면 될 터였다.


제공받은 출판사 투고 리스트에 나와 오글오글 회원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그렇게 한층 업그레이드 된 투고 리스트는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쓰일 것이다. 그이도 본인의 몫을 더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겠지? 그리고 그 선순환의 어디쯤에 내가 서있다가 얼결에 또 다른 도움을 받게될 것이다.


이런 선순환에 대한 믿음은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그동안 남들에게 퍼주기만 하면서 호구처럼 살아온 것같아 마음이 메마르곤 했는데, 오랜만에 마음이 촉촉해진 것 같은 아침이다.



먼 길 달려온 제자들의 선물. 진심은 통한다는 믿음이 느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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