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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Sep 06. 2024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는 미달 인생

<인간 실격>을 읽고

'너무나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 실격>은, 첫 문장 그대로 요조라는 인간의 부끄러운 삶을 보여준다. 무엇이 그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었는지 배경 설명은 없다. 



요조는 대부호의 집에서 태어난 데다 잘생긴 얼굴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며 겉으론 부족함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존재라 생각하며 어릿광대짓을 선택한다. 겉으로 그럴싸한 웃음과 사회성을 지님으로써, 무서운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그러다 집을 벗어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사이, 다케이치, 호리키 같은 친구(?)를 만나 인생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고, 매춘부, 술과 담배에 빠져든 것이다. 요조는 술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지만, 청소년기부터 성인까지 그를 지배한 것은 술이다.






술은 어린 시절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어릿광대짓과 닮았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몽롱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인간들에게 웃음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그만 마실 때도 됐건만 그는 술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가진 모든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기둥서방으로 얹혀사는 여자의 기모노 속옷을 전당포에 맡기면서 까지 술을 마신다. 세상이 무섭고 인간이 공포스러웠던 그는, 술에 의존해야 버틸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에게도 생에의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집, 저 집,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의지하며 질척 거리고 비굴한 삶을 이어간 것만 보아도 그렇다. 눈이 하얗게 내리는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피를 토하면서도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인가" 노래를 읊조리는 것을 보아도 '고향'으로 대변되는 '인간다운 삶, 순수한 삶'을 갈구하고 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여자들의 손을 거치면서도 순수함이 빛나는 요시코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요시코와 함께라면 "자전거를 타고 신록이 우거진 숲 속 폭포로 가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나 의존하던 술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그림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요시코와 장사꾼의 몹쓸 짓이었다. (소설 속에는 요시코가 능욕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던 것을 생각하니 몹쓸 짓이 아니었을까 해석했다.)



한 톨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삶이란 이런 것일까? 왜 저렇게 사나 혀를 끌끌 차게 되는 삶이라 그런 것일까? 요조는 '내 불행은 전부 내가 저지른 죄에서 비롯된 것이라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는다. 설명해 봐야 "나는 이 미치광이를 직접 알지 못한다."는 소설 속 말처럼, 그를 모르는 이들에겐 "요조"가 아닌 "미치광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추락하는 인간을 목도하고도 손가락질 하나로 쉽게 그의 인생 전체를 평가한다. 막장, 폐인이라는 짧은 단어로라도 표현해 준다면 그나마 감사한 것인가?



우리가 어떤 이를 인간 이하로 대우하며 왜?라고 묻지 않았듯이, 요조도 자신의 일기에 왜?를 남기지 않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그래서 구차한 변명이나 미치광이의 헛소리가 될 게 뻔해서였을 것이다. 스스로 인간 이하의 짓을 하고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위선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인간 실격. 인간 이하. 구제 불능이라 말하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걸지도.






그래서였을까? <인간 실격>은 이렇게 끝이 난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아주 순수한 데다 남 배려할 줄도 알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니 마셔도... 천사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인간 실격"이라 말하지만, 요조를 아는 사람들은 요조를 "천사 같은 아이였다"라고 말한다.



다자이 오사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숱한 자살 시도와 복잡한 여성 관계, 약물 중독과 정신병원 입원. 결국은 내연녀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모든 것이 그야말로 "인간 실격"임을. 그리고 어떤 변명도 "미치광이의 항변"으로 들릴 것임을. 그래서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 실격>에서, 요조의 삶에 대해 어떤 이유도, 배경 설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문장을 통해, 말하지 못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요."라고. 함량 미달의 삶을 살던 사람에게도 인간다움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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