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혜정 Aug 30. 2024

인생이란 산에서 깔딱 고개를 만났다면

"내 이럴 줄 알았다. 조금만 참았으면 됐을 텐데."



최고의 스포츠로 등산을 꼽는 우리 부부. 별다른 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산사람은 아니지만, 산 사랑은 누구 못지않은 사람들이다. 나름 산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자주 실패하는 것이 있다. 바로 쉼터 찾기. 등산을 하다 보면, 보통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 구간의 끝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오늘도 한참을 올라왔는데, 이쯤이면 나올 법한 쉼터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는 한눈에 봐도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쉬지 않으면 오르막에서 멈춰 설 것 같았다. 적당히 타협하고 앉을만한 곳을 찾았다. 나는 바위에 어정쩡하게 걸터 앉고, 최는 선채로 휴식을 취했다. 


오르막길 앞에 서면, 멈추고 싶어진다


등산할 때면 빠짐없이 챙기는 믹스 커피를 마시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스테비아 토마토와 얼음 물도 잊지 않았다. 얼굴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맺힌 땀을 스포츠 타월로 닦고, 머리를 묶은 후 모자를 썼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기합을 넣고 출발한 지 얼마 안 가 벤치가 나왔다. 가방 걸이까지 마련돼 있었다. 이런! 조금만 더 힘을 냈더라면, 멋진 풍경을 보며 편하게 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조금만 참았으면 됐을 텐데."


오르막길의 밑에선 위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조금만 더 가면, 기다리던 그것이 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고난 앞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분명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는 것을 알지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때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커다란 장애물이 눈앞에 있고, 그 뒤에 내가 꿈꾸는 무언가가 있는데 장애물만 눈에 들어와 주저앉아 있다. 힘을 쥐어짜고 싶은데, 체력이 다한 것인지 무기력하게 그 장애물만 바라보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이곳도 적당히 앉아서 쉴만 한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될까? 힘이 다 빠졌다고, 여기서 멈추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시선은 왜 항상 높은 곳을 향할까?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나는 산에 있어서만큼은 포기한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생각보다 쉼이 길어져도 정상까지 가겠노라 마음먹었을 땐 결국 정상에 올랐다. 



포기하지 않으면,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오르막은 끝이 나고, 오르막을 넘어 당도한 그곳의 풍경은 언제나 기대 이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맛을 경험한 사람은 힘들어도 계속 산에 오르게 되어 있다. 



오르막을 눈앞에 두고 멈추느냐, 나아가느냐의 기로에 서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럴 때마다 니체와 밀을 떠올린다. 니체는 현재에 안주하고 안분지족하는 삶을 비천한 삶으로 보았다. 존 스튜어트 밀도 수준 높은 쾌락을 경험한 사람은 수준 낮은 쾌락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반대 의견을 제시한 철학자들도 떠올려 본다. 혼란스럽다. 어떤 선택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줄지 고민된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내 선택이고 내 삶임을 안다. 또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 것임을 안다. 



그러니 언제나 그랬듯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되어도 다시 한번 나의 삶을 살겠노라! 기꺼이 외칠 것임을 다짐해 본다.



더없이 고상한 영혼은 가장 긴 사다리를 갖고 있는,
그리하여 가장 깊은 심연까지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영혼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산은 좋아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잔뜩 얼어있는 뒷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행복 루틴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