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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May 03. 2022

겹벚꽃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강렬하고 풍성한 에너지

  겹벚꽃을 좋아한다. 색이 진하고 숱이 풍성하다. 몽글몽글 뭉쳐있는 꽃다발을 가까이서 보면 그 색의 진함이 섹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깊게 피어오른 원숙함이 고혹적이다. 그런 섹시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생기지 않은 나는 섹시한 남자는 되고 싶다.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키울 수 있는 외모는 한계가 있다. 최소한 꽃미남은 아니다. 비율이 좋지도 않다. 옷을 잘 입지는 않는다. 그러면 내가 키울 수 있는 꽃잎은 뭘까.


  몸은 잘 키우고 있다. 겉으로 과하지 않은 적당한 몸을 만들려면 헬스장에서는 남모르게 죽어라 운동해야 한다. 최소한 요즘에 운동할 때는 죽어라 하고 있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아침 운동의 계절이 왔다. 기온이 적당한 새벽에 일어나 운동으로 아침을 열기 좋은 날이 오고 있다. 운동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선크림을 잘 발라야겠다. 까무잡잡한 나는 더 이상 피부색이 변하면 출생 대륙을 의심받을 수 있다. 동아시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부색을 지켜야 한다. 이른 아침에 축구를 해도 1시간쯤 지나면 광대 쪽이 따끔따끔하더라. 그때마다 다시 차에 가서 땀을 닦고 선크림을 듬뿍 바른다. 지킬 수 있을 때 지켜놔야 하는 게 치아와 피부임을 깨달았다. 잘 지켜야지.


  말을 차분하게 해야겠다. 내가 듣는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 중에서 말을 잘하는 남자들의 화법을 유심히 듣는다. 생각의 정리와 차분한 표현과 적절한 유머가 참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다. 올바른 생각과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로움.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는 유머와 세대를 직통하는 진리의 표현 등등 여러 대화를 가만히 듣다 보면 감탄을 한다. 가벼운 웃음으로 웃기에는 내가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웃음만을 위한 유머보다는 은연중에 나오는 가벼운 센스에서 감탄을 한다. 절대적인 재능의 영역인 것 같지만 나는 좀 더 노력을 해보려 한다. 말을 잘하려는 노력과 집중을 하다 보면 말을 오히려 아끼게 되더라.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기분과 표정을 먼저 보는 습관을 들이고 상대방의 말을 더 경청한다. 가만히 듣게 된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려는 눈치를 본다. 그런 상대방의 호흡에 나를 녹이면 1의 주제에서 100의 주제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더라. 이런 매력을 키워보고 싶다.


  글을 착하게 쓰고 싶다.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에서 눈팅을 하기조차 저열하고 천박한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아무리 양보해서 그 중심 생각이 기존의 가치를 초월했다 하더라도 특정 대상을 비하하고 모욕하며 내 생각의 정당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인정을 바라지 않더라도 맹목적인 비하는 절대 하지 않겠다. 아무리 글이더라도 고인에 대한 모욕과 역사의 곡해와 거짓 정보를 분별하고 거르고 싶다. 이런 저열한 글에 일일이 반박을 하는 글에도 통쾌감을 느끼지도 못하겠더라. 아예 섞이기가 싫다. 말조차 섞고 싶지 않다. 이런 글들에 동의하며 이 글 또는 이 얘기를 아냐며 물어보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의 진위를 판단해봤는지 궁금하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해서 글을 잘 써보고 싶다. 착한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겪은 사실만을 담백하고 재미있게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꽃 봉오리가 꽃을 피우기까지 가장 많은 봄 볕을 받는 겹벚꽃 마냥 오랫동안 고민하고 퇴고하면서 신중한 생각을 정갈한 글로 표현하고 싶다. 브런치는 그런 나의 성숙을 연습하는 꽃 봉오리 안의 작은 세계다.


  좀 더 절실하게 살고 싶다. 나는 왜 내일이 있다고 안주하며 사는 것인가.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내 생에 절실함을 갖고 열심히 살고 싶다. 매 순간 잘 살았다 스스로 칭찬할 만큼 숨이 가득 차오르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나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인생이다. 삶을 살아간다기보다 누군가에게 기생하고 있다. 더 이상 내 삶을 사는 데에 변명과 핑계를 너무 길게도 나불거리며 살았다. 영화 '베놈 2'에서 내가 가진 악마의 속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이 되더라. 내가 가진 삶의 불만족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끌어내고 싶다.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정말 일말의 운 때문에 내가 만족한 결과는 얻지 못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내 인생과 에너지를 산화하고 싶다. 내 청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지막 불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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