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까만 오른발 May 02. 2022

내 몸의 열기는 비로 씻는다.

봄 비 속 수중 축구 후기

  봄비가 기분좋게 내린다.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여운이 손끝에 차갑게 느껴진다.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 일몰까지 비가 얼마나 올까 창문만 쳐다봤다. 회장님과 감독님과 1시간 단위로 통화를 하면서 오늘 할까요? 말까요? 하면서 고민을 했다. 이렇게 공차는 걸 좋아했던가 자문했다. 스스로 한심했다. 모니터를 보며 할 일이 쌓여있고 언제 완성되냐는 독촉전화를 이래저래 둘러대면서 내 시선의 한켠은 비가 오는 창문을 바라봤다. 비가 이 정도로 계속 오면 잔디가 빗물에 잠겨 공이 잘 굴러가지 않을텐데.. 지금부터 비가 안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목,금,토,일 동안 연이어 내리는 봄비가 목요일 저녁에 잠시만 비가 오지 않았으면 했다. 무작정 내 욕심대로 축구 경기를 진행하기에도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고 먹구름도 저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가 보니 여러 회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도 역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랬다.


  4월 내내 그렇게 날씨가 더할나위없이 좋다가 하필 우리가 공을 차려는 그 날에 비가 올까 원망했다. 정말 더할나위 없이 맑고 시원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책상앞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보기에는 뒤통수가 따가울 만큼 햇빛이 가득 찬 나날이었다. 옷을 예쁘게 입기 좋은 나날이었다. 유니폼도 입기 좋은 날이었으면 안될까 싶었다. 습기가 하루 종일 가득 온 몸을 지배했고 수분 가득한 바람이 불어댔다. 나뭇잎과 꽃들은 빗물로 샤워를 할 준비를 하듯 진한 속살을 보여줬다. 기상청의 오보를 기대했다. 하지만 어떻게 1분도 틀리지 않고 우리가 운동장을 예약한 오후 9시가 되자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는 없었다. 이미 8시 부터 25명의 회원들이 모여 각자 몸을 풀었다. 이미 뭔가를 각오한 모양이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갈 수 있는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비니를 쓴 회원도 있었다. 뭐 이미 끝났다. 킥오프가 불리고 우리는 공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밤 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 우리의 눈빛은 빛났다. 마치 영화 300의 주인공 디오니소스 황제의 마지막 전투를 내레이션하는 배우의 대사처럼 내가 빗속을 가르며 뛰었던 모든 순간이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비를 너무 걱정했던 탓일까. 지나치게 굳은 내 몸과 빗물에 씻겨내려가듯 미끄러져 멀어지는 공을 바라보는 나의 무거운 발은 너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부족했다. 내일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헬스장에서 하체근력을 다져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넷플릭스 다큐] 이카로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