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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Jun 28. 2022

사나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극중 아버지에 대하여

"그런 고민 안하실 것 같았는데."

극 중 이기우 배우분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와 같이 기억한다.

나도 그랬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조카들 여름 양말 하나 사오라고 하셨다. 천원 매장에서 사면 싸게 살 수 있단다. 나는 그 '천원 매장'이 '다이x'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고 아버지는 대답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끊긴 전화 통화기록에 적힌 통화 시간을 보니 '4초'였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시고 현재는 육아를 전업으로 하신다. 4살,3살 남자 조카들을 아침부터 재우기 전까지 돌보신다. 


  아버지의 원래 성격은 위의 사진에 나온 천호진 배우님과 똑같다. 도무지 말이 없으시다. 표정 하나를 더 보려면 술을 드셔야 한다. 아주 많이. 소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밖에서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다. 그 날이 아버지가 집에서 웃는 날이었다. 그리고 술을 안 드시는 날은 표정과 눈동자와 어느 손끝 하나 미동없이 누워서 티비만 보셨다. 그게 내 유년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기억이다. 


 정말 천호진 아저씨와 똑같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하시던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드라마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엄마가 거의 절규하듯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으시다. 왜 그런 걸까. 그 당시 마초적인 매력 포인트였나? 학교에서 집에서는 과묵하라 가르쳤나? 도무지 화도 내지 않으셨다. 정말 신기하다. 결국 제 풀에 지치신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엄마는 쉼없이 뒤에 앉아 아버지에게 못다한 얘기를 나에게 다 하셨다. 그래서 집안 사정을 엄마 시점에서 세뇌당한 나는 항상 친가 친척들과 대립하며 싸워왔다. 


  그렇게 과묵했던 아버지가 조카들이 태어난 후에는 비닐 봉지를 당신 머리에 쓰며 조카들 앞에서 애교를 부리신다. 이후 매일 아침을 조카들을 보며 웃기 시작하셨다. 내가 약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며 기억하지 못한 표정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동생이 이혼을 하고 본가에 두 아이들이 밤낮으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좀 더 자주,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실랑이 하면서 노래를 함께 하거나 서로 놀리고는 했다. 밥을 먹이고 오른 손에는 큰 아이, 왼 손에는 작은 아이 손을 잡고 옛날 동요를 함께 부르며 이른 아침부터 동네를 시끄럽게 어린이집에 등원하신다. 


  나는 아버지가 당신 손자들에게 사랑을 쏟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나 싶다. 다만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한 거 아닐까 싶었다. 아버지에게 여성적인 면모도 느껴진다. 공직에 계셨지만 거의 현장직을 도맡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참 예쁘시다. 그런 손으로 아이들의 옷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겨주고 쓰담쓰담해주는 아버지의 다정함을 나도 느낀다.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해 본가에 가서 아버지가 사오라던 조카들의 여름 양말을 드리니 아버지는 나에게 옅은 발음으로 "고맙다"라고 하셨다.


  내가 오늘 글을 쓴 이유다.


  아버지가 나에게 "고맙다"라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다.


  이 말을 아버지에게 처음 들었다. 당신 손자들을 아껴줘서 나에게 고마운 걸까. 가족의 소중함을 당신 아들이 알아서 고마운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아버지의 마음에 두 조카들이 들어가서 행복을 준 걸까. 우리 아버지가 약해지신 걸까. 앞으로 나에게 가장의 자리를 물러주시려는 걸까. 정말 별 생각이 다 든다.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살아온 습관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다.


  우리 아버지는 사나이로서 가족의 생계를 온 몸으로 짊어지고 살아오셨다. 은퇴를 하셔서도 그 짐을 모두 내려놓지 못하시고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가신다. 그 어깨를 덜어드릴 수 있도록 내가 좀 더 커야겠다. 오늘의 감정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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