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까만 오른발 Jun 29. 2022

마주보고 앉는게 아니면 안될까.

명색이 해방하려는 사람들 모임인데 모임이 좀 편해야 되지 않나 해서

JTBC 토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대사다.


  동호회의 본질을 관통하는 명대사다. 나는 현재 풋살 동호회 총무를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나이 순대로 내려오다보니 이렇게 됐다. 기왕 처음 써 본 동호회 감투가 안좋은 기억으로 끝나지 않도록 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상반기가 지났다. 우리 동호회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성인 남성 회원으로 이우져 있다. 사내 동아리도 아니고 지역 동아리다. 보통 타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넘어온 근로자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는 외로운 남자들끼리 모여 작은 구장에서 살과 땀을 부대끼며 거친 호흡을 주고 받는다. 불쾌하다.

 

 그래서 꽤 높은 강도의 운동량과 일반인 치고는 빠른 템포의 경기력을 유지한다. 매주 목요일 풋살 2시간을 하고 나면 왼쪽 무릎이 퉁퉁 부어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오롯이 쉬고 싶을 정도로 목요일 저녁에 모든 힘을 뺀다. 회원들과 얘기를 해보니 나와 비슷하더라. 다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기분을 낼 수 없어서 따로 몸관리를 한다더라. 우리 동호회의 본질은 이렇다. 축구나 풋살을 좋아하고 많이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다. 그래서 운동량도 늘었고 이 운동량을 견디지 못해 탈퇴하거나 소식없이 나오지 않는 회원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학창시절이나 소싯적 공 좀 굴려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 연령대도 20대 회원이 절반 이상일 정도로 내려가고 있다. 반면 체력이 버거운 어르신 회원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런 회원들을 매월 정리하는게 내 주업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 이 사회를 살면서 30대에 이르러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축구와 풋살이다. 그래서 이 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축구와 풋살을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과 축구와 풋살을 한다. 그런데 세대차이인걸까.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축구와 풋살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 외에 다른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경조사까지 챙겨야 한다고 한다. 잘 모르겠다.

이 모임을 운영하다보면 개인적인 친분이 쌓일 수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고 선택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한다고 하는 윗세대의 말이 궤변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이든 어른들을 배려하기 위해 조금 더 살살하고 공을 더 밀어줘야한다고 한다. 사람 봐가면서 패스 조절하고 템포 조절하는 건 정말 공을 잘 차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는 기성용처럼 넓은 시야와 패스 기술로 우리 팀의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이다. 아직까지 국가대표에서도 기성용 이후 그런 중원의 사령관이 없어서 전국민이 월드컵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인 가운데 이 작은 동호회에서 그런걸 바라신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이 활동량이고 경합인데 그걸 줄이란다. 그걸 줄이지 않고 마음 놓고 뛰는 회원들을 나무란다. 제일 하고 싶어서 나온 모임에서 제일 해야하는 걸 못하게 한다. 뭔가 싶다. 상반기까지 이런 분들 많이 정리했는데 하반기에는 아예 털어버릴 생각이다.


  별다른 활동없이 대화만 하는 동호회에서조차 마주보고 앉는게 불편한 사람도 있다. 당연히 있다. 나도 혼자가 좋다. 그래서 헬스를 하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게 내 취미다. 그렇지만 축구나 풋살을 제일 좋아한다. 혼자는 할 수 없어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 찾아간다. 그런데 그 안에서 또 내가 해야할 의무가 있단다. 도무지 이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걸까.


  하반기의 총무로서 나는 일주일 내내 살아가면서 딱 목요일 2시간 동안만큼은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을 유감없이 펼치고 해소하고 집에 돌아가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할 것이다. 나부터 그게 편하다. 불필요한 회식은 단칼에 잘라버리고 술마시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모이게 만들거다. 별도의 경조사비는 일체 걷지 않을 것이고 출석이나 불출석을 강요하지도 않을거다. 그냥 오롯이 운동만 하고 자기기분 내고 돌아가는 기본에 중점을 맞출거다. 


  같은 마음으로 모였더라도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지 못한 회원이 몇 있더라. 총무짓을 하다보니 전 회원과 카톡으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 별 이야기가 들리더라. 운동을 하는데도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더라. 내가 벼르고 있다. 선한 사람이 편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하되 못된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놓고 편하게 하려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당장 해야겠더라. 


  동호회니까. 사내도 아니고. 친인척도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가 죽어 억지로 해야할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숙이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저번 지방 선거때는 회장아저씨가 특정 벌건당 관계자와 친인척이라며 명함을 돌린다고 풋살 1게임이 끝나고 회원들을 모여보라는데 속에서 욱한 마음이 돋아 공을 뻥 차버리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유야무야 넘어가는 식에 더이상 내 에너지와 시간을 단 1도 소모하지 않으리라. 


  대화를 하는 모임에서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일자로 앉을 수 있고 고개를 숙이고 얘기할 수 있다. 글을 주고 받는 모임에서 누가 볼까봐 내가 쓴 단어를 지워버릴 수 있다. 뭐든 할 수 있다. 다만 그 행동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거나 강요하는 건 아닐 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조심히 해야한다. 경기장에서 유니폼 색만 맞으면 다른 색을 입어도 된다. 문신을 해도 된다. 다 된다. 그러나 나말고 다른 사람한테 일절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 뭐가 그리 불편한 분들이 많은 지.. 남자가 남자다운 면이 없다.


  나이 많은 사람은 쓸데 없는 뭘 하자고 난리. 나이 어린 사람은 뭐 하자면 왜 하냐고 난리다. 그 사람들은 나더러는 왜 그렇게 유난이냐 하겠지. 하 정말 사람이 싫다 ㅋㅋ


  나부터라도 이렇게 하고 싶은 거 잘하고 기분좋게 집에 돌아가고 다른 회원들도 딱 거기까지만 하고 집에 가다보면 또 다른 회원이 오고 남고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일주일 내내 시간을 견디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목요일 저녁 단 두시간 만이라도 괜찮은 시간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숨 가쁘게 소리지르면서.

작가의 이전글 사나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