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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Jun 08. 2022

걔 욕심 뻔하고 내 주제 빤하고.

근데 나는 그걸 해줄 수 없는 남자.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포스터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결핍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본다.


  서울에 살고 싶다. 결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난 뭐가 없다. 뭐가 없는 걸 없는 채로 살기는 싫다. 고달파지기는 싫다. 그런데 사랑은 한다. 좋아한다. 자꾸 머리에 남는다. 내 평생을 걸만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연애만 수 년 째. 그 여자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서울에 살았으면 이렇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서울에 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기도에 살았을 때도 충남에 내려와 살고 있는 지금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가끔 올라가는 서울에서 답답함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시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어떤 생활을 하기보다 그냥 나를 무관심하게 여기는 사람들 틈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살면 지금 내 형편에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끽해야 반 지하나 내 몸하나 눕기 힘든 고시원이나 원룸이 전부일텐데.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시골에 살면 나한테 주어지는 관심이 피곤하다. 그리고 각자를 존중할 줄  모른다. 내가 편한게 먼저다. 목소리 크게 내도 된다. 개 목줄 풀고 다녀도 된다. 길가다 툭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한다. 왜일까. 코너에 그냥 주차해도 된다. 좌회전 우회전 깜빡이 안켜도 된다. 마스크 안 써도 된다. 길가에서 담배피워도 된다. 연기 냄새 풍겨도 된다. 그냥 그래도 된다.


  왜? 왜 ? 왜일까? 수없이 생각해봤다. 우리 엄마도 그런다. 내 동생도 그런다.(아버지는 절대 안그러신다.) 대부분 그래도 된단다. 왜 일까.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도 된단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해서 불편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것도 못하냐. 그렇게 빡빡하게 살면 너만 지친다. 그만 좀 불편해 해라. 애 가지면 이런거 아무렇지 않다. 잠깐만 차대고 뺼건데 뭘 그렇게 구냐. 너 여기서 그렇게 살면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데 어쩌려고 하냐. 너 누구 아들 아니냐. 이 동네만 그런건가. 내 수준이 이래서 그런걸까.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던데. 나도 이 부류에 속하면서 나는 아닌 척 하는건가. 나도 누군가에게 내 행동으로 인해 불편해하는걸 모르는 것 뿐일까. 인지조차 못하기에 사과도 못하는 그런 하등한 인격체일까. 


  얼마 전에 장충동에서 족발을 먹은 적이 있다. 유명한 가게인데 사람이 많았다. 사람많은 서울에서 좁디 좁은 가게가 꽉차게 사람이 많았는데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남산을 등반하고 내려온 산악회 아저씨들은 조용히 말씀을 나누시다가 가끔 박수를 치셨다. 강아지를 안고 들어온 중년의 사모님들은 주변 손님들에게 개를 들고와서 미안하다고 먼저 인사를 건내셨다. 동국대생들로 보이는 대학생 10명이 들어왔을 때 말 다 했다 싶었는데 2열로 앉아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더라. 그리고 다시 여기에 내려와서 극장에 갔는데.. 내 앞에서 어린 커플이 영화 도중에 핸드폰을 자꾸 켜고 톡을 보내고.. 여자분 잠금패턴을 외울 정도로 봤다. 참다가 남자한테 말을 했는데 듣지를 못하더라. 그래서 욱한 마음에 앞좌석을 발로 세게 찼다. 놀란 남자는 나를 쳐다봤고 나는 핸드폰 끄라고 했다. 물론 눈에 힘은 잔뜩 들어간 채로. 남자는 대꾸도 않고 폰을 껐다. 그리고 여자는 계속 폰 화면을 껐다 켰다 하더라. 연이어서 얘기하기가 뭐해서 기다렸다가 영화가 끝나고 쿠키영상을 기다릴때 말을 건냈다. 그러니 톡이 오는데 어떡하냐고 하더라. 정말 살의를 느꼈다. 지금 생각해도 뒷목이 뻣뻣해진다. 여자친구가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그 커플을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다행히 못찾았다. 앞으로도 못찾기를..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 곳에서 살기가 싫은,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좀 남에게 피해 안주고 안받는 생활을 하고 싶은 여러가지 나의 분노와 결핍과 질투와 어이없음의 원인이 서울에서 살 지 못하는 나인지 하는 오만가지 졸렬한 생각을 해본다.


  나도 한번 내 결핍, 설움을 쏟아내보고싶었다. 극 중 염창희(이민기 분)는 자기 고환 친구들 앞에서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말이 많은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이 글에서도 못하겠다. 그런 내 속마음을 염창희가 대신 얘기해줘서 고맙다. 나 혼자 있어도 못하는 말을 해줬다. 고맙다. 염창희 .. 형!


  영혼이 안다는 말, 그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을 나도 공감한다. 축구를 할 때 확실한 골 찬스가 나에게 온 걸 느끼는 것 보다 패스를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내 확신은 슛이다. 영혼이 안다. 같은 팀원을 한번 보고 공을 한번 밀어놓고 골대가 있는 쪽을 향해 왼발을 디디고 오른발을 뒤로 잔뜩 뺀다. 100% 골이다. 100% 골이 아니면 골키퍼가 120% 기량으로 막던지 0.0000~% 확률도 골대가 움직이던지. 그럴 때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결국 내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다시 준비를 한다.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그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준비를 한다. 욱한 마음을 딱 한번 참아보고 상대방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끝을 모르고 뿜어대던 화는 순식간에 식는다. 나를 화나게 했던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33년을 잘 버텨서 아직 경찰서는 안갔나보다. 


  약 8년 전 25살 대학을 휴학하고 공부할 때에 할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할아버지를 거의 매주 찾아 뵈었다. 소변줄을 자꾸 빼시기에 사지가 침대에 묶인 채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처참했다. 눈빛은 매주 볼때마다 초점을 잃어갔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그저 매주 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 주 갔다. 그게 핑계는 아니었지만 내 취업은 점점 밀렸다. 그래도 다시 돌이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나는 할아버지에게 찾아갔을 것이다. 가족, 사람을 대하는 게, 그 교감을 포기하는게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그 정성이 예뻐보였는 지 아버지는 당신이 빚대신 얻어온 2005년식 구형 산타페를 나에게 주셨다. 선물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걸리지 않기 위한 도피책이었을까. 덕분에 약 1년동안 잘 숨겨서 탔다. 


  염창희가 왜 그렇게 차를 갈망했는 지 알 것 같다. 우리집은 자가용이 없었다. 내가 대학에 가고 처음 차가 생겼다. 이후 위에 언급한 2005년식 산타페가 첫차로 생겼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굳이 학교 사물함을 신청하지 않아도 됐다. 가방도 필요없었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학교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려 수십미터 수백명이 줄을 서 있는 아침에 내 산타페는 맨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정차를 하고 여자친구를 기다렸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백명의 학우를 가로질러 내 차를 타는 여자친구의 두 어깨를 바라보는 다른 학우들의 시셈어린 질투를 온 몸으로 느낀 그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 그 때의 산타페는 나에게 포르쉐였고 롤스로이스였다. 


  부식이 이미 진행중이고 헤드라이트 한 쪽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경운기 소리가 났지만 나는 행복했다. 여자친구가 외박이 되지 않아 새벽 두 시에 인천에서 출발해 세 시쯤 양천구에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경포대로 출발했다. 쉬지 않고 운전한 끝에 도착한 동해바다에서 맞이하는 해는 어쩜 그리 따뜻하던지. 별 별 추억이 다 있다. 염창희가 밥상에서 아버지에게 "차가 없어서 키스도 제대로 못합니다 아버지"라고 했을 때 그 공감이란. 


  4인 가족이 행복하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 가끔 바람이라도 쐬려면 자가용이 있어야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가끔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간다. 차가 뭔지는 중요한 지 모르겠다. 안전하면 그만이라 생각해서 독일3사 정도는 부럽지도 않다. 막상 차를 바꾸려 하니 현대기아도 부담스럽더라. 


  그냥 라디오 듣듯 이 드라마를 켜놓고 있다. 들을 때마다 이렇게라도 내뱉지 않으면 뭔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미 지난 드라마같은데 계속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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