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안내면 2~3일이면 기분이 나아질 거 화내고 나면 열흘은 안 좋아져
나는 욱하는 면이 있다. 인격적으로 모자라다. 아직 어른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특히 '화'에 있어서는 유독 성숙하지 못하다. '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삭히지는 못하겠다. 속에서 막 끓어올라 주체를 못 하겠다.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다. 그냥 말로 시작해서도 안될 것 같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낼 자신도 없다. 한번 고조되면 도무지 진정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를 다른 쪽으로 표출해야 한다. 지금 지구의 기온이 펄펄 끓고 있는 원인도 지구에서 인간이 발생한 열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지구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참기는 참더라도 '화'는 다른 구멍으로 남모르게 배출해야 한다. 나만의 '화'를 푸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음악
윤도현밴드(Y.B), N.E.X.T, 서태지 등등 과거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대중 록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뻥 뚫린다. 담배가게 아가씨, 박하사탕, 해에게서 소년에게, 껍질의 파괴, Lazenca save us, Tik Tak, live wire 등등 헤비메탈이라기에는 가사가 너무 잘 들리고 락 발라드라기에는 드럼 박자가 가슴을 너무 아프게 쿵쿵 때린다. 너무 좋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운전할 때 들으면 음악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속도를 줄인다. 최근에 들어서는 밴드 음악이 쇠퇴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국 락의 명맥을 잇는 밴드는 '술탄오브더디스코'라고 자부한다. '압둘라의 여인'을 제일 좋아한다. 일정한 드럼 박자와 기타 선율이 내 마음을 정말 진정시켜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에미넴, 투팍, 스눕독, 아이스큐브, 제이지, 등등 어디서 언젠가는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진짜'힙합.
그리고 드렁큰타이거, mc스나이퍼, 리쌍, 다이내믹 듀오, 에픽하이, 수프림팀 등등 싸이월드를 대표했던 그 시절'한국'힙합.
화가 날 때 오히려 차분한 음악을 들으면 더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봤던 영화 중에 최악으로는 '캣츠'를 꼽는다. 불쾌한 골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고양이들의 씰룩거리는 빵뎅이를 인스텝 킥으로 무회전을 걸어 걷어 차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에 여유가 넘치는 재즈가 섞여 나오니 그 불쾌함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화딱지 나는 정면은 '토르'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문지기 역할을 하던 '이드레스 엘바'가 검고 묵직한 빵뎅이를 자꾸 흔들어대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 이후로 재즈만 들으면 그 영화 장면이 생각난다. 뮤지컬 영화는 절대 보지 않을 결심을 한다.
그렇게 듣고 싶은 음악만 골라 들을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숨통이 트인다. 음악을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은 항상 특별하다. 내 '화'가 차오른 기분보다 더 과격하고 폭발력 넘치는 음악을 듣고 나면 내 마음이 가라앉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편안해진다. 다만 이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 듣는 노래가 대부분 옛날 록 음악이고 흥에 겨워 이 노래들을 부르고 나면 이후 며칠간 목이 쉰 채로 일상을 보내야 한다.
2. 운동
'화'는 아주 효과가 좋은 부스터다. 힘이 솟는다. 아주 그냥 다 들어재끼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과한 '화'는 운동 중에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어서 자세가 무너질 수 있다. '화'가 났던 상황을 인식하기보다는 그때에 쌓인 코르티솔이 한 세트를 마친 후에 깊은 날숨으로 빠져나갈 때 마음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화'가 내 몸을 지배하는 날은 첫 세트부터 풀업을 한다. 풀업을 하면 평소에는 한 세트에 15개 정도를 한다. 그런데 '화'가 나는 날에는 그냥 끌어올리면 20개까지도 가능해진다. 그렇게 얼얼하게 혈액이 가득 모여 팅팅 부은 등을 보고 씅난 등근육이라고 하나보다.
3. 뒷담
나는 '화'가 났다고 해서 술을 찾지는 않는다. 술자리를 찾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술이 들어가서도 화가 가신 다기보다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함께 쉼 없이 쏟아 나오는 그 X에 대한 얘기를 쏟아낸다. 그런데 이건 좀 위험한 것 같다. 세상은 좁고 말은 계속 돌기에.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는 꽤 좁다. 그 좁은 동네에서 술을 마시면서 이성의 끈은 놓아가는데 혓바닥은 잠시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렇지만 뭐.. 사람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사건에 대한 얘기를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 같은 친구들만 모였을 때 한다. 걔네들은 내가 이런 놈인 걸 안다. 나도 걔네들이 하는 험담을 가만히 들어주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핵우산을 다정히 씌워준 사이다. 그런 친구가 딱 셋이 있다. 우리 끼리 입을 열면 우리 대부분은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거나 외국으로 밀항을 할 것이다. 내가 틀린 말 한것도 아니고 나중에 걸리면 그냥 내가 했다고 하고 줘패던지 내가 줘터지던지 하련다. 후회는 없다.
4. 잠
잠은 감정소모가 극심할 때 잔다. 여자친구와 싸우거나 이미 화를 안좋은 방식으로 표출하거나 조카들을 하루 이상 볼 때에 미온수로 샤워를 하고 창문과 방문을 다 걸어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린 후에 잠을 자며 지치고 고조된 마음을 잠들면서 방귀를 뿡뿡 뀌면서 배출한다. 그래서 자다가 뀌는 방귀 소리는 꽤 크다. 퍽 좋은 방식이다. 그렇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기에 이 결과를 해결하려면 다시 속이 쓰려온다. 그래서 애초에 화를 내지 않는게 제일 속 편한 방법이다.
5. 브런치
나는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잘못과 단점과 과오와 고칠 점을 상기하려고 쓴다. 일종의 고백이다.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이라고 고칠게 많은 사람인지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부터 내 반성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나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내 약점을 알아주십사가 아니고 나를 물어뜯어 잡수십쇼라는 의식같다. 여기 브런치에 쓰는 글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주 극소수의 나와 가장 가까운 유대를 맺고 있는 사람만 안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래서 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내 생각과 내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단지 재미있게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글을 실제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라이크를 찍어주시고 심지어는 구독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하고 감개무량하고 내가 더 부끄러워진다.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님을 고백한다. 하지만 여기저기 치이면서 나름 줏대가 생겼고 재미는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