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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Aug 07. 2022

소제동 작은 골목

노잼 도시는 맞는데 그래도 나름 뭐

 대전에 소제동이라는 곳이 있다. 익선동, 혜화동 골목 어딘가 느낌이 나는 오래된 주택거리를 카페로 리모델링해서 운영하는 곳이다. 천변에 있는 기다란 골목 사이사이에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 잡아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감성이 뭔지는 알겠더라. 어제는 소제동에 가서 이런 인스타그램 감성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일상을 몸소 겪어봤다.


# 간판

  일단 간판이 크면 안 된다. 간판에 상호명이 다 있으면 그 감성이 망가지나 보다. 음식 사진은 A4용지로 출력해 대충 벽에 발라 붙여 놓으면 된다. 글씨는 작아야 한다. 뭐가 됐든 잘 안 보여야 하고 함축하고 숨겨야 하며 조용조용히 찾는 재미를 이끌어 내려고 발악한다. 


#주차

  그 감성은 주차까지 적용된다. 주차할 곳이 없다. 아 진짜 주차할 곳이 없다. 이면도로 한편에 주차를 하더라도 주차를 아주 아름답게 해 놨다. 길목 한복판에 서 있는 레이는 주차인지 정차인지 갈길을 몰라 헤매는 건지 한참을 뒤에서 기다렸다. 결국 주차. 주차 공간이 있어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이곳을 찾는 젊은 연령대의 초보 운전자들에게 무자비한 이면도로. 운전실력이라고 매도하기에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겠지만 하상도로를 내려가는 초입의 반을 먹고 주차한 흰색 BMW 미니의 문에 붙은 분홍색 천사 스펀지를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정말 머리끝까지 들었다. 

#인테리어

  나무를 대들보 삼아 천장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는 센스 있어 보였고 고즈넉하니 예뻤다. 내가 갔던 카페는 라탄으로 몽글몽글한 조명이 나무 대들보와 베이지색 벽에 잘 어울렸다. 거기에 의자까지 편했다. 이 카페 전에 둘러봤던 카페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의자에 흰색을 바탕으로 인테리어를 구성했는데도 꽤 불편하고 조악해 보이는 인테리어 소품들로 카페를 운영했다. 일단 형형 색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가 보이면 자동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 나온다. 의자가 생긴 게 폭력적이다. 그 의자에 앉으면 5분 내로 스르르륵 엉덩이가 미끄러져 내가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플레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수플레가 힘겹게 입성했던 소제동에 대한 힘겨운 기억을 달달하게 포장해줬다. 쟁반에 담긴 수플레를 직접 받아 걸어오는데 수플레가 아기 엉덩이 마냥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너무 귀여워서 접시를 손에 잡은 채로 살랑살랑 움직이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집중하고 있는 앞에 계신 분께 핀잔을 들었다. 먹기도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수플레를 나이프로 갈라 한 입 물어 넣으니 달달하고 부드러운 게 맛있었다. 쌉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잘 어울렸다.


  인스타 감성을 몸소 체험하니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 영화 '퓨리'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폭력적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몇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무더위 폭염을 뚫고 기어코 기어 들어와서 이미 자리가 꽉 찬 카페에서 사람들이 언제 나갈지 눈치를 주며 이리저리 산만하게 뛰어다니던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와 하상 도로 입구 한복판에 차를 세워둔 BMW 미니 차주와 이면도로에 대각선으로 레이를 세워둔 차주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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