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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Aug 07. 2022

[축구] 경기가 잡혔다!

다음 주 일요일 11:11 경기가 잡혀버렸다!

  일요일에 출근을 했다. 딱히 할 건 없지만, 아니해야 할 건 있는데 하기가 싫어서 브런치를 열었다. 그리고 심드렁하게 있는 와중에 다음 주에 5~60대 아저씨들이 주로 뛰고 있는 팀과 매치가 잡혔다. 연배가 거의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분들이지만 그만큼 상당한 구력과 노련미로 운동을 하시기에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우리 팀은 풋살팀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외에 다른 날짜에 운동을 소집해본 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 물어봤다. 일단 실력 여하를 떠나 운동이 가능한 시간이 먼저 확보되는 사람이 선발의 기회를 받는 게 생활 축구니까. 그렇게 11명 선발 외에 교체 선수로 1명을 더 소집했다. 오늘의 글감은 그들에 대한 나의 평가다.


  언급 순서는 나와 친밀도 순이며 별명은 내가 보는 이미지로 정했다. 개인 신상을 최대한 공개하지 않은 채로 운동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서술해야겠다. 언젠가는 내 주변 사람들도 이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겠다.

1. 간잽이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꾸준히 해서 그런지 발재간이 좋다. 손 발이 길쭉길쭉하다. 주력은 빠르지 않고 활동량도 넓지 않다. 대신 어려서부터 꾸준히 쌓은 구력과 눈치로 아주 간결하고 야비하게 공을 찬다. 주로 상대방의 가랑이 사이를 노리는 짓을 잘한다. 애가 평소에도 맥없이 축 처진채 걸어 다닌다. 이런 생활 패턴이 축구에 잘 녹아든 것 같다. 가볍고 부드럽게 공을 찬다. 마치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었던 공격수 일명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터치를 뽐낸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서 속닥대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그런지 수비수 혹은 중앙 미드필더를 선호한다. 아주 가끔씩 아름답게 감겨 들어가는 중거리 슛을 잘 찬다. 다음 주 매치에는 왼쪽 중앙 수비수 혹은 중앙 미드필더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기용할 예정이다.

2. 방실이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을 갖고 있다. 평소 헬스를 매주 저녁에 2시간씩 한다. 파워리프팅 방식으로 풀가동 범위로 보디빌딩식 고 반복 세트수로 운동을 한다. 굳이 유산소를 하지 않아도 될만한 열량 소비를 중량운동으로 소화한다. 각종 구기종목을 섭렵한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평소 풋살 공에 적응이 되어 있어 축구공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풋살장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실수를 축구장에서는 가끔 한다. 엄청난 근력 덕분에 치고 달리면 패스급으로 공을 멀리 쳐놔도 악착같이 잡아 마무리한다. 타고난 체력 덕분에 수비 가담도 뛰어나다. 정말 대단한 아저씨다. 다음 주 매치에는 좌우 중 측면 공격수나 측면 수비수를 맡길 생각이다.

3. 인텔리

  수비수다. 대인 마크에 능하다. 한 사람을 잡아놓으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수비를 한다. 대신 거칠게 붙지 않고 깔끔하게 공을 따낸다. 순발력이 좋아 순간적인 개인기에 능하다. 양발 드리블을 잘한다. 작은 체격을 운동 신경으로 완벽하게 보완한다. 마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끈 파비오 칸나바로를 연상시킨다. 대신 킥이 아쉽다. 부드러운 터치로 공을 잡아놓고 롱킥에서 점수를 깎는다. 롱킥보다는 짧은 패스로 주고받으며 경기를 운영하면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 같다. 얼굴이 잘생겨서 아주 매너가 좋아 보인다. 중앙 수비나 전방 압박에 능한 역할을 맡길 생각이다.

  4. 결혼이

  킥이 강점이다. 슛 파워가 엄청 좋다. 정확도도 꽤 좋다. 마치 2008년 갓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웨인 루니를 보는 것 같다.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좋다. 2대 1 패스도 능하다. 마무리 킥도 깔끔하다. 가끔 중거리 슛 기회가 한 번 나면 맘먹고 후린다. 뒤가 없다. 이에 반해 활동 반경이 좁다. 스프린트에 약하고 수비보다는 공이 오기를 기다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공격수가 잘 어울린다. 주력은 좋지만 스프린트 간격이 좁은 편이기 때문에 윙어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쉐도우 스트라이커나 원톱이 어울린다. 

5. 세렝게티

  일요일에 집에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눈물까지 핑 돌았던 유부남 형님. 마치 세렝게티 초원을 나다녀야 하는 이름 모를 털 많은 짐승이 동물원 우리에 갇힌 듯 항상 자유를 갈망하는 형이다. 움직임이 폭발적이다. 패스 센스도 좋고 공격적인 역할에서 활동 반경이 좋다. 문전 침투 타이밍도 잘 봐서 이 형이랑 같은 팀을 하면 짧은 크로스든 긴 크로스든 어떻게든 받아 마무리를 하기에 믿고 올린다. 쇼맨십이 좋아 팀 사기를 올리는데 정말 중요한 형이다. 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상대팀에게는 압도적인 공포까지 심어줄 수 있다. 대신 수비 가담이 적다. 공격수가 적격이다. 중앙 공격수나 왼쪽 측면 공격수를 맡길 생각이다.

6. 징징이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형이다. 운동을 목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공격수 본능이 확실히 뛰어난 것 같다. 전방 압박이 좋고 빈 공간을 잘 찾아든다. 대신 활동 범위가 좁고 주력이 느리다. 운동할 때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들이댈 수 있게 응원을 해줘야 한다. 측면 공격수를 맡기고 싶다.


7. 흰둥이

  애가 순하고 조용하다. 뽀얗고 차분하다. 운동도 자기 성격 따라 하나보다. 큰 키와 뛰어난 피지컬을 갖고 있음에도 공을 잘 다룬다. 침착하게 양발로 드리블을 하며 탈압박을 한 후 적재적소에 패스를 잘 넣어준다. 거의 실수가 없다. 빌드업이 뛰어나 중앙 수비수나 중앙 홀딩 미드필더를 하면 잘할 것 같다. 앞만 보지 않고 침착하게 좌우로 공수를 조율하는 역할이 잘 어울린다. 잘생겼다.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것 같다. 키가 크고 뽀얗고 덥수룩한 머리에 평소에는 조용조용하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고 뛰는 걸 잘하는 너드 상이다. 부럽다.

8. 풍선이

  개인기가 좋다. 공을 좀 찰 줄 안다. 근데 자기가 운동을 잘하는 걸 본인도 안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개인기만 하다가 뺏길 때가 있다. 조금만 더 간결하게 한다면 실력이 더 상승할 것 같다. 개인기가 좋고 팀플레이도 좋다. 주고받는 게 가능한 시야를 갖고 있다. 활동량이 좋아 수비력도 좋다. 나와 합이 잘 맞는다. 오래 봐서 그런지 눈빛만 봐도 어떤 움직임을 할지 알 것 같다. 인사이드로 하는 모든 플레이를 잘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마치 레알 마드리드의 토니 크로스를 보는 것 같다. 

9. 깔끔이

  내 코치 선생님이다. 대학까지 선수를 했고 현재는 제2의 길을 찾으면서 취미로 축구를 하고 있다. 밝은 인상과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가장 늦게 팀에 들어왔지만 아주 쉽게 녹아들었다. 감히 내가 평가를 할 수 없다. 이 친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더 재밌고 잘 된다. 어떤 운동을 했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 선수 특유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부드러운 모든 자세에 감탄한다. 애가 참 매력 있게 생겼다. 자기가 서고 싶은 곳을 먼저 물어보고 필자인 나는 어디에 설까?라고 물어봐야 한다.

10. 아쎄이

  무서운 형. 이 형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둬야 하고 형이 이래라 저래라 하라는 대로 군말없이 하는 게 제일 편하다. 상대편과는 마찰이 없기를 바란다. 애써 쿨한 척 재미있는 척하며 웃어넘기려 하지만 그 안에 날이 서 있는 모습을 숨길 수 없다. 많이 참는 게 보이는 형. 오른쪽 측면 공격수에 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야겠다.

11. 침침이

  무서운데 나랑은 잘 안 맞는 형. 그냥 상대가 가까이 있는 거 상관없이 풀스윙으로 후리는 형. 앵클 브레이커, 무릎 파괴자. 인상도 괴팍한데 플레이도 거칠다. 육중한 몸으로 잘 뛰어다닌다. 아쎄이 형과 침침이 형이 함께라면 상대 어느 누구도 쉽게 시비를 걸 지는 못할 듯. 아무리 매너 있게 다치지 않게 운동을 하자고 골백번 얘기해도 막상 시작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고조되면 한 번씩은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를 초반에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외모가 필요하다. 외모도 곧 능력이다. 이런 무서운 형들이 먼저 나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형들을 뽑았다. 얼굴로 먹고사는 형들이라 든든하다. 

12. 나

  나는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 쪽에서 중심을 잡고 싶다. 상대편도 내가 소속되어있는 축구 동호회다. 각자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월하게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축구는 수비가 탄탄한 팀이 더 재밌게 공격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잘하는 걸 못하게 해서 기세를 꺾는 동시에 역습으로 정신없이 패야 같은 골이 들어가도 훨씬 통쾌한 느낌이 든다. 그 기세를 꺾는 역할을 하고 싶다. 상대편 에이스 선수를 맨 마킹하면서 상대편의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압박을 하겠다. 일주일이 기다려진다. 내일은 하체 운동을 해놔야겠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우승팀인 이탈리아를 벤치마킹하겠다. 내가 본 국가대항전 중에서 가장 한 팀으로 움직였던 경기를 보여줬던 팀이다. 파비오 그로소-파비오 칸나바로- 알렉산드로 네스타 - 루카 잠브로타의 4백은 견고했다. 칸나바로의 지휘 아래 오버래핑을 올라가는 양 풀백의 공간을 잘 매웠고 집중력 높은 허슬플레이로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했다. 데 로시-가투소-피를로의 중원은 데 로시와 가투소의 광범위한 활동량과 터프함을 앞세워 공을 뺏은 후 피를로의 아름다운 조율로 중원을 쉽게 풀어 나갔다. 여기에 정통 장신 공격수 루카 토니와 토리노의 신사 델 피에로, 이 월드컵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윙어 카모라네시.  그저 이탈리아 그 자체였다. 그 이후 긴 침체기를 겪고 나서 최근 다시 부활의 전조를 보인 이탈리아지만 2006년 당시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현재도 찾기 힘들다. 단단하게 수비를 하고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중원을 풀어나가 보련다. 공격은 알아서 하게 두고.


  재밌겠다. 별 상상으로 글을 풀어내 쓰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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