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내가 잘한 일

결산보고

by 새까만 오른발

1. 사람을 살린 일


축구경기를 하다가 상대방 뒷발에 걸려 목이 꺾인 채로 떨어진 같은 팀 50대 아저씨가 잔디에 누워 한 30초 동안 누워 있는게 보였다. 내가 멀리 있었음에도 가장 빨리 달려가 몸이 기억하는대로 기도를 열었다. 무의식에 굳게 닫힌 턱을 힘을 줘 열고 손가락으로 말린 혀를 잡아 뺐다. 그리고 혀를 턱쪽으로 꾸욱 눌러 기도를 열었다. 쓰러져 의식이 없는 아저씨의 가슴팍은 숨을 쉬려 조금씩 움직이는게 보였다. CPR은 따로 하지 않고 기도만 열고 119가 올때까지 손가락이 물려 아플 틈도 없이 힘을주고 숨을 불어 넣었다. 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10분쯤 지났을까. 119 구급 의료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릴 무렵 이 아저씨가 의식을 찾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얀 눈자위에 동공이 비추고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게 보였다. 다행이다. 턱을 붙잡은 손에 서서히 힘이 빠졌다. 119가 응급 치료를 할 무렵 나는 내 손에 묻은 침과 타액을 물로 씻어내고 축구화를 챙기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 아저씨는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 후 다행히 아무런 손상없이 퇴원하셨고 지금도 함께 공을 차고 있다. 좋아하기만 한 운동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해볼 줄이야.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내가 몸이 먼저 반응해 나설 것 같다. 누구를 살린다는 일이 무섭지만 스스로 잘했다 싶은 몇 안되는 일이었다.


2. 브라질리언 왁싱


나는 머리숱이 많지만 턱 아래로는 털이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30대 중반을 달리는 시점에서 내 신체에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 별 생각을 다 하며 찾아봤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시술이 시작할 무렵 나의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저 2차 성징 이후로 항상 함께 했던 모든 모근과 이별을 하는 고통은 생전 처음 겪어봤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거리낌없이 세상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내달릴 준비를 했다. 이 고통을 이겨낸 나는 현대판 니체로 하반기를 살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금쪽이라 여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