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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20. 2015

캐나다 이민생활 <13>

좌충 우돌 초기 정착기(C)

(사진 설명) 무서운 기세로 여름을 뽐냈던 폭염도 한풀 꺾였다. 마냥 푸를 것으로 여겼던 나무들도 곧 붉게 물들 것이다. 그리고 곧 우기가 닥치면서 좋은 시절은 가고 내년을 기다릴 것이다. 저 멀리 걸려있는 뭉게 구름이 여름의 종막을 알리고 있다. 교민들이 즐겨 찾는 골프장에서. 


두 번째 직업은  치기공소. 들리는 말로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고 기술만 익히면 언제든지 자기 비즈니스를 할 수 있으면서 돈도 솔찬게 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지원했다. 지원자는 단 두명. 이혼한 아주머니와 경합이었다. 


사장 면접이 첫 번 째이자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분은 이빨을 만들면서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었다. 눈길은 당연히 자신이 만드는 이빨에 두고서. 처음엔 한국에서 뭘 했는지 등등 사소한 주변잡담정도 하다가 치기공소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게 뭐하는 곳인지 알고는 있느냐에서부터 주설주설 썰을 풀다가 간혹 답을 요하는 물음 같은걸 말하다가 예술적 감각을 요구하는 직업이다고 끝을 맺었다.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을의 입장이라서 무조건 잘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학교 다닐 때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떠벌렸다. 확인할 수 없으니 뻥인지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이곳의 장점은  업무시간과 분야가 명확한 것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까지 10시간 중 점심시간 한 시간 빼면 실제 9시간 일하는 셈이었다. 페이도 9시간만큼만 줬다. 식당보다 적었지만 시간이 픽스됐고 주 5일 근무에 주 이틀 논다는 게 큰 메릿트였다. 일거리는 거래처인 치과에서 이빨 모형을 수거해와서 가장 기본적인 모델 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완성된 이빨을 그곳에 돌려주는 배달일도 내 몫이었다. 모델일이란 치과에서 뜬  이빨 모형을 실제 구강모형같이 만드는 석고작업을 일컫는다.


이 작업 들은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라서 사장이 한번 시범을 보이고 바 로시작할수 있는 단순노무에 불과했다. 다만 숙련의 과정은 필요했다. 사장은 겁을 많이 줬다. 바늘구멍 크기의 버벌만 생겨도 일을 망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몇 번씩 재작업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선 큰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었고 전체 작업의 보조를 대충 맞출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엔 배달일. 이건 좀 해봤으니 길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운전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주고객은 치과의사. 국적도 다양했다. 총 8군데인데 중국인이 3명, 필리핀 이태리 인도가 각 1명씩이고 백인이 두 명이었다. 중국인은 다정다감하면서 친절한 편이고 백인은 약간 무시하는 스타일, 인도는 완전 막가는 스타일이고, 필리핀 이태리는 그저 그런 인간형. 특히 인도치과의사는 젊은 아가씨인데  항상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면서 불렀다. 


출근길은 막히지 않으면 15분 이내. 만일 막히면 40분 이상  소요됐다. 특히 강을 지나는 다리에서 정체가 심했다. 7시 이전엔 그냥 통과하는데 그 이후엔 살인적 정체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7시 이전에 나가면 한시 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참 어중간한 출근길이었다. 그래도 좀 일찍 나갔다.


일을 시작하면서 또 하나의 과업이 부과됐다. 언젠가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빨을 알아야 하고 그러 위해서는 이빨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사장은 교육했다. 나도 어차피 이길로 접어들었으니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으로 매일 숙제로 이빨 하나씩 만들어 사장에게 검사를 받았다. 검사에 통과된 것보다 거부된 게 훨씬 많았다. 그래도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보고 하나씩  한 발자국씩 족적을 찍어 나갔다.


사무실 직원은 나를 포함해서 4명. 사장과 말을 주로 썩는 맞은편 아주머니가 사모고 다른 쪽 책상에 앉은 젊은이가 기사턱인 것 같았다. 중요한 일은 두부부가 하고 중간과정의 일부 작업은 그 기사가 했다. 부부가 항상 마주 보고 일을 하니 퍽 다정해 보이긴 하는데 끊임없이 티격 태격 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이어서 숨 쉬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사모가 주로 참았다.  화풀이는 모델룸에 들어와서 석고 반죽 한번   떡 치는 걸로 해소했다. 방안 공기로 그들의 히스토리를 종합해보면, 사장은 이민 온지 오래 됐고 처음엔 토론토에서 정착한 뒤 유태인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 악착같은 인간들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비슷한 인간성을 갖게 됐다. 좋은 건 아니지만 장점도 있다. 이 정도의 과거사를 알고 대하니 조금 참고가 됐다.


좁은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오는 게 속이 편했다. 그렇다고 길에서 마냥 헤맬 수는 없는 처지.  사모가 항상 시간을 체크했다. 그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땡땡이 친 적은 없다.  뭘 알아야 샛길로 빠질 건데 당체... 그러니  그럭저럭  배움을 바탕에 두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아주 먼 곳에 새 거래처가 생겼다. 멀기도 했지만 처음엔 이 인간들이 간보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먼길에 비해 물건을 듬뿍 건네진 않는다. 그래도 사장은 미래를 내다보고 성심껏 잘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생각에 역행하는 작은 사건이 터지면서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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