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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27. 2015

캐나다 이민생활 <14>

좌충우돌 초기 정착기(D)

(사진 설명)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면서... 떨어지는 물기둥과 치솟는 물보라를 보면서 기를 다시 한번 모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올려 보았습니다. 지난달 지인이 선상에서 직접 전화기로 찍은 근접 사진.   더 이상  접근했다가는...


그 사건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내겐  아주 긴박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이 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당황함도 한 몫 거들었다. 


그건 차키를 차 안에 두고 내린 것이다. 치과에서는 약속된 시간에 환자를 불러 만들어진 이빨을 끼워야 하는데 이게 안 오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 보기 위해 쓰레기 통도 뒤져보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해결잭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답이 없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내가 너무 촛자였던데 있다.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었고 그 시간만큼 빨리 서두르다가 발생했다. 지금 생각하니 잠깐인데 남의 가게 앞이나 빈 주차장에 주차하면 될 텐데 그때는 겁이 났고 또 끌고 간다는 경고문이 버젓이 붙어 있는데 내 베짱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약속 시간은 지났지만 해결은 해야 했다. 회사에 전화하면 '들어 온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사고 치나'고  말할게 분명하고 또 자신의 과실은 본인이 풀어야 된다는 회사 분위기가  망설이게 했다. 결국 영어 수업 중인 와이프한테 전화를 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운전해본 적이 없는 와이프는 무슨 용기가 낫는지 수업을 중단하고 쏜쌀같이 왔다. 회사에 들러 보조키를 갖고서. 결국 사장 내외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내손으로 해결했으니 별 말은 안 했다. 대신 밤늦게까지  배달물을 다 돌리는 조건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 사건으로 와이프는 한층 성숙된 운전 경험을 갖게 되었다. 


이걸 계기로 매사에 조심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면서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우선 그 당시 인기 품목이었던 게잡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장소와 장비 등의 정보를 얻은뒤 철저히 준비하고 첫 출조에 나섰다. 온가족이 들뜬 기분으로 바닷가로 갔다. 와이프는 무슨 큰 행사인양 찬합에 밥과 반찬을 가득 담았다. 


궂은 날씨 탓에 단 한명만 게를 잡고 있었다. 얼핏 보면 우리 교민 같은데 어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알쏭달쏭한 사람으로 보였다. 우리끼리 신나게 우리말로 지껄였다. 그러자 그 남자 왈, "  이민 온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 바로 우리 교민이구나. 그걸 인연으로 그물 던지는 법과 미끼 끼는 것, 사이즈 재는 것, 제한수등 등을 배웠다.  


게는 무지하게 올라왔다. 그러나 대부분 크기가 안 맞아서 살려줬다. 큰 게는 16.5센티고 붉은 게는 11.5센티였다. 손바닥 보다 더 커야  통과되었다. 이것도 하루에 세 마리가 한정이다. 첫 날은 단속은 없었지만 세 마리만 잡고  철수했다. 이놈들은 쪄서 소주 한잔 걸치니 너무 행복했다. 이게 바로 캐나다 라이프구나라고 식구 모두 지껄였다.  


일단 길을 트니 수시로 들락거렸다. 토 일 노는 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게잡으러 갔다. 절대 실패한 날이 없었다. 이걸 미국에 다니러 오신 장모님께 자랑을 했다. 어촌 출신 장모님은 한걸음에 오셨다. 다음날부터 줄곧 게잡이에 나섰다. 내가 출근하면 와이프가 모셔 갔다.  그러나 장모님은 잡은걸 모조리 다 가져 왔다. 한 마리도 살려주지 않고. 덜컥 겁이 났다.  며칠 하다가 살살 여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돈도 벌고  이것저것 하면서  재미도 있고 완전 다른 생활에 대한 적응이 차츰 돼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퇴근 후 문화는 누릴 수 없지만 그와 다른 어떤 묘미가 하나씩 가슴으로 스며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뒤를 살짝 돌아봤다. 내 벌이와 생활비의 엇박자가 심했다. 아무리 아껴도 2000불 이상 적자가 매달 발생했다. 그래서 젊은 기사한테 물어봤다. 그는 10년 경력인데 나보다 900불 정도 더 받았다. 그 친구도 생활이 안돼서 와이프가 미용사로 일했다. 정식 기사로  더 많은 페이를 받기 위해서는 무슨 2년제 전문학교를 나와야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곳에 관심을 두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학교는 대기자가 무지하게 많았다. 그리고  고3 영어실력을 요구했다. 다시 한번 영어 장벽에 막혀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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