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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Oct 02. 2015

캐나다 이민생활 <15>

좌충 우돌 초기 정착기(E)

(사진설명) 밴쿠버 유일의 한인성당. 교민들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총 세분의 신부님 중 한분이 임기만료로 한국 원주 베론 성당으로 떠나시기 전 마지막 기념 촬영. 공부하는 신부님으로 정평이 나있고 강론도 독보적 인면이 있으서 많은 교우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작년 연말에 "성모 마리아께서 만삭의 몸으로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걸어왔다는 기록은 잘못된 게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사진 맨 오른쪽은 아내. 


처음엔 무슨 일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져온 돈이 줄어들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소한 늘리지는 못하더래도 까먹지는 말아야 될 텐데 경험이 일천해서 하루하루 적자가 늘어났다. 이사회를 알기 위한 투자라 생각하면 맘이 편한데 뒷돈이 짧은 상태서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이유로  새직장에 약간 안정이 되면 항상 딴생각을 하게 된다. 먹고사는 게 여기선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와 매일 머리를 맞댔다. 결론은 비즈니스.


일단 덴탈랩에는 계속 다니면서 무슨 사업을 할 건지 정하기로 했다. 얼핏 봐서 샌드위치 가게가 괜찮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시작하지만 오후 서너 시쯤에 닫았다. 공장지대 가게는 토 일은 쉬었다. 근무 환경은 좋아 보였다. 그래도 알아봐야 하니 아내가 그곳에 취직을 했다. 3개월 정도 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노였다. 한꺼번에 밀려와서 정신이 없는데다가 저녁 장사를  안 해서 돈이 안될 것 같다는 했다. 그리고 일찍 마쳐도 시장을 보고 내일 장사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가 주축이 되는 새 직종을 찾기로 하고 랩은 6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당시 교민들이 많이 하던 세탁소로 방향을 틀었다. 고교 선배 가게에서 일손을 도우면서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로 했다. 일주일 해봤는데 괜찮아 보였다. 본격적인 세탁소 찾기에 나섰다. 교민이 내놓은 가게를 한 번보고 인도주인인 가게를 두 번째로 봤다. 별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충분히 우리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매출 규모였다. 


이와 별도로 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마지막 임금의 60프로를 받았다. 이것도 가뭄의 단비처럼 아껴 썼다. 실업급여 신청 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 당시 별 불경기도 아닌데 노동부사무실은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주로 유색인종들. 대부분  인도인들이었다. 신청서식 작성테이블은 빈틈이 없었고 펜도 한참 기다려야 제차레가 돌아왔다. 난 내 볼펜으로 작성하고 옆에 가여운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인도 사람에게 빌려줬다. 근데 이양반 다쓴뒤 자기 호주머니에 슬쩍 꽂아버리네. 달라고 하자 굉장히 생뚱맞은 표정과 벌레 씹은 얼굴로 날 쳐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내것은 당연히 내 것 이고 네 것도 내 것 이다는 인도인들의 관념을 이해 못한데서 시작된 오해였다. 


세탁소로 방향을 잡자  하루빨리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부동산은 양쪽이 다 세우는데 우린 교민을, 저쪽은 인도 할머니가 대리했다. 매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알지 못해서 거의 우리 부동산에게 일임하다시피 했다. 그분도 자신을 성당에 다니고 오른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임을 강조하면서 신뢰를 은근히 내세웠다. 그래도 과정은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서 고교동기한테 물었다. 그는 이미 밴쿠버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내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지, 아님 알고도 미친척 하는 건지 엉뚱한 말만 하곤 했다. 자기의 경험담을 한 번만 쓰윽 말하면 되는데 그걸 무척 아꼈다. 일단 포기하고 우리 부동산이 하자는 데로 그냥 뒀다. 이게 지나고 나니 우리의  실수였다.


그는 저쪽과 너무 유착이 돼 버렸다. 신참이 겪는 마지막 관문은 좀 가혹했다. 돈이 좀 샜다. 마지막 딜은 저쪽 두 사람과 우리 부동산이 마주했다. 우린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최고의 가격이라면서 우리 부동산이 수용을 압박하고 우린 오케이 했다. 그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누군가 이 세탁소를 샀고 트레이닝 과정에서 비싸다고 손을 들고 나가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면 딜의 시작은 최소한 그 가격에서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 일련의 이런 과정을 우리 부동산은 우리에게 말해줄 의무가 있는데 촛자라는 이유로 무시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필요하고 중요한 현장에는 항상 늦게 오거나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상대 부동산이 우리의 권리를 찾아주기도 했다.그후  그를 간혹 만난다. 그런 걸 보면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판단이 많이 흐려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거래는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마지막 관문은 4주간의 트레이닝.


첫 2주는 전주인의 은행계좌에, 그리고 완전 인수인계가 끝나고 2주간은 내 호주머니에 매출이 찍히면서 트레이닝은 끝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이 인도인이 우리한테 한걸 생각하면 그냥 웃음밖에 안 나온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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