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Oct 04. 2015

캐나다 이민 생활 <16>

좌충우돌 초기 정착기(F)

(사진 설명) 맨 오른쪽이 우리 가게. 78년에 셋업 돼서 37년간 4명의 주인을 맞았다. 왼편 네일숍은 베트남인이 주인이다. 월남인들은 네일숍, 옷 수선, 베트남 쌀국수식당을 꽉 잡고 있다. 우린 그로서리 세탁소 빨래방 일식당등에 주로 종사한다. 맨 왼편은 올 9월에 오픈한 주류가계. 원래 그 자리엔 75년도에 입점한 옷가게가 있었는데 주인이 너무 늙어서 문을 닫았다. 사진 오른편엔 스타벅스가 있다. 주차장이 항상 붐벼 우리 손님들은 불만이 많다. 세탁소 로딩존을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상가주인이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인도인 주인은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했다. 상당한 인텔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그의 와이프도 괜찮은 직장의 관리자로 있었고 두 딸도 워낙 공부를 잘해 동네에서 호가 나있었다. 게다가 그 식구 네명다 인물이 걸출한 편이었다. 그래서 인도인이지만 크게 가슴 졸이지 않았다.  이 사회에서는 인도인이라 하면 상당히 열등한 민족 내지는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아직 경험을 해보지 못한 상태였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제 눈을 똑바로 뜨면 어떻게 하겠나'하고 좀 안일한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구매자이긴 해도 4주간 착실히 세탁일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어서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그런 빈틈을 파고 들었던 것 같았다.


우선 인수인계 품목에 들어있지 않은 종목에 대해 구구절절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가게에 당연히 필요한 필수 품목인데 그걸 별도로 돈을 받는다는 게 의아했다. 예를 들어 밖에 있는 간판이라든지 창문에 있는 블라인드, 선풍기 냉장고 TV  작은 가구 등등. 우리 복덕방에 물어보니 묵묵 부답. 그쪽 부동산이 이해하기 쉽게 말해줬다. 세탁소에 직접 관련 없는 물품은 값을 쳐야 한다고 했다. 냉장고 선풍기 TV는 돈을 줬다. 버려야 될 정도인데 거부하면 행여 트레이닝이 제대로 안될까 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았다.


그리고 스탁의 경우. 50대 50인데 겉은론 새것처럼 해놓고 안에는 걸레 같은걸 집어넣어 불룩하게 만든 뒤 가격을 제멋대로 적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장비나 물품도 헛수가 많았다. 손님들이 되가져오는 행어를 따로 모아 박스를 만든 뒤 새 가격으로 우리에게 넘기기도 했고 보일러 일부 파트도  전기용량 때문에 빼놓은 건데 유사시 대비용이라면서 따로 돈을 받기도 했다. 이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가 하면서 알게 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 즉 우리가 그의 사기행각을 알 수 있는 시기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편물 찾으러 우리 가게를 들락거렸다.  


더 압권은 세탁물이다. 인수인계 4주간 차로 세탁물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의도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린 돈만 받으면 되니까. 완전 인수가 끝난 뒤는 돈이 우리 호주머니로 들어와야 하는데 모두 외상이라면 입금을 시키지 않았다. 그는 손수 가져온 물건을 딜리버리까지 하면서도 돈은 나중에 옷 주인이 가게로 가져다 줄 것이다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몇 번 다그쳤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넝청스럽게 발뺌을 했다. 그리고 그는 트레이닝이 끝난 뒤 떠났다. 그리고 입금은 되지 않고. 할 수 없이 그들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물었다. 이름과 지역만 알려줬다. 올드그로브의 판즈와니.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판즈와니는 우리의 김씨와 같이 무지하게 많았다. 몇 명을 찍어 전화를 했다. 미친놈 취급만 받았다. 그리고 포기했다. 그 뒤에도 그 주인은 몇 번 더 우리 가게에 왔었다. 배짱은 백두장사급처럼 보였다.


그는 세탁소를 넘긴 뒤 인도인이 하는 호텔의 보조 매니저로 갔다가 무슬림의 성직자가 됐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그걸 말하는 자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더 열 받는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우리 가게로 인도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 한인 부동산을 찾는다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훌륭한 부동산에게 판매를 의뢰하고 싶다면서 꼭 전화번호를 가리켜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머리를 벽에 찧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겪는 마지막 시험대라 생각하고 모두  씻어내기로 와이프 약속했다. 그리고 조상에게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시는 바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지켜 주시길...


이런 바람이 통했는지 2명의 직원은 우리의 무지를 많아 커버를 해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영국 이민 일세대인 한 아주머니는 우리의 속을 많이 썩혔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생활 <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