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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Nov 25. 2015

캐나다 이민생활 <23>

세탁소 유리창에 비친 그들의 실상 허상 잔상(상)

(사진설명) 코스코 출입구 제일 번 노출 구역에 배치돼 있는 LG텔레비전. 그 뒤에 삼성이 있다. 한때 이 자리는 일본 제품이 독차지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우리의 독무대가 됐다. 이민자들은 사소한 이런 것부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민자들의 적응기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각자 과거가 틀리고 또 현지에서 부딪히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주변의 환경을 돌아보면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그러기 위해 괜찮은 직장에 다니거나 비즈니스의 안정을 손꼽을 수 있다. 만일 비즈니스를 한다면 예상된 매출과 이익이 실현돼야 하고, 종업원 컨트롤이 가능해야 하고, 가게 안의 장비나 기계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본다.  그 외 손님들과의 교감도 한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걸 근거로 이민자들의 심리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외국에 도착하면 환희와 행복,  그다음에 오는 심리가 배신과 절망, 포기를 거쳐 맨 마지막으로 순응, 적응 뭐 이런 과정을 통과의례로 삼는 것 같았다. 이 길은 보통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짐작된다. 일단 노는 것 보다 뭔가를 추구하면 이과정은 훨씬 빨라진다. 그만큼 이사회를 빨리 학습하기 때문이다.


먼저 환희. 한국에서 부닥치며 살다가 북미에 오면 천국과 같다. 원시 자연이 바로 곁에 존재하고 할 발짝만 움직이면 천연 상태의 호수와 산 강이 즐비하다. 게다가 군데군데 공원이 조성돼 있는데다가 아무리 외진 곳의 화장실이라도 기본적으로 물과 화장지가 비치돼 있다. 취미생활도 여유와 자유가 동반된다. 낚시만 해도 민물 바다 가릴 것 없이 고기가 잘 잡히고 크다. 골프비는 한마디로 너무 싸다. 우리의 당구비보다 적은 경우가 더러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못해본 것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사냥이나 비행기 조종, 요트 ,스킨스쿠바 등등. 아주 합리적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뻑간다. 그리고 하얀 피부의 현지인들의 친절한 미소에 슬슬 녹는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곧 사라진다. 놀만큼 놀았다 싶어서 뭔가 일을 시도해 보는 시기가 온다. 이건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보통 6개월 지나면 지겨워서, 그리고 통장 잔고가 불안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 맨 먼저 부닥치는 게 언어장벽이다.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에 다녔으면 문제가 안되지만 영어와 담고 살다가 덜컥 온 사람들은 입이 안 떨어진다. 그래서 정부보조 영어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이것도 어른이 돼서 그런지 느는 게 더디다. 그래서 직업을 가지면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서 구직에 나선다. 현지인 회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술과 기능이 있는 일부는 간혹 취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한인업소에 들어간다. 이민역사가 짧아서 주로 요식업이나 소규모 가족경영 업체뿐이다. 여기서 좌절감을 맛본다. 한 달 내 일해봐야 손에 쥐는 돈으로 가족 부양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부부 둘이서 뛴다. 호구는 해결되지만 가정생활은 희생이 따른다.


이와 다른 노선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찾는 경우도 더러 있다. 새로운 길은 두려워서 못하고 주로 교민들이 많이 하는 업종을 선택한다. 이과정에 입문하는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주로 현지인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보였던 백인들의 실제 모습을 하나씩 보게 된다. 우리와 너무 다르다. 공사가 분명하고 순간적인 거짓말을 잘한다. 능청스럽고 똑똑하다. 이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걸 피해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를 선택하는 주변 사람도 간혹있다. 이터널을 슬기롭게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포기라는 단어를 머리에 새겨야 한다. 뭘 갖고 뭘 버려야 하는지.


포기는 절망의 단계를 거친 사람이 갖는  훈장쯤이랄까. 이 단계에서는 무서울게 없어진다. 그리고 이동네 사람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을 했고, 그들 만치는 안되지만 거짓말 수준도 향상된다. 밉게만 보이던 현지인들의 행동양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나도 모르게 그들과  닮아간다.  그 결과 벌이도 괜찮아진다. 그리고 벌이 과정이 편해진다. 더 이상 대드는 종업원이 없어진다. 교우관계도 넓어진다. 호주머니에 있던 날카로운 칼날이 사라지니 다칠 염려가 없어진다. 살만해진다. 그리고 고향이 그리워진다.


포기 과정과 순응의 단계는 일부 겹친다. 포기는 버리면서 얻는 거라면 순응은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딴 곳으로 가끔 눈을 돌린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 잡필을 올리거나, 취미에 좀 더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와 함께 행동반경도 넓어진다. 일주일씩 가게를 비우기도 한다. 이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 할 일을 실제한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이다고 생각했었는데 없어도 잘 돌아간다.     가게 손님들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아침에도 내가 있고 점심 저녁에도 보이는 것. 그리고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은 물론 겨울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걸 이상한 시각으로 본다. 뭘 위해 사는가 뭐 이런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젠 그들의 시선을 풀어줄 때가 됐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단점은 고향이 과거처럼 애틋해지지가 않는다. 친구와 술자리를 해도 말이 헛돌고 조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불같이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가면 갑갑해진다. 아파트 천장도 낮아 보이고 그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몸에서 빠져 나간 것 같다. 수구초심이라 했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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