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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Dec 02. 2015

캐나다 이민생활 <24>

세탁소 창에 비친 그들의 실상 허상 잔상(하)

(사진설명) 장모님 칠순 때 찍은 가족사진. 울적할 때 이 사진만 보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창원의 경남도청 아래 한정식집에서 이날 행사를 했는데 약간 길어지자 애들은 잠에 빠졌고 사진 찍자고 깨우니 둘째는 왕짜증을 부리고 있다. 큰 놈은 약간 분위기를 알고  잠결에 포즈를 취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첫 번째로 원하는 건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거다. 막힘없이 술술, 어떤 곳에서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대충 눈치껏 살아간다.


나의 경우는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이 많이 남아있어서  발음에 크고 작은 문제가 종종 지적되곤 한다. 특히 숫자 12와 골프, R 발음은 상대가 잘못 알아먹는다.  12불 얼마쯤 세탁비가 나오면 먼저 걱정이 앞선다. 입에다가 힘을 주고 정성껏 말하는데도 잘 못 알아듣고 재차 삼차 묻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 등록기에 찍어서 보여준다.


'골프'는 좀 의아한 경우다. 국경이 근방에 있어서 그린피가 싼 미국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때마다 검문소에서 좀 지체된다.


"어디 가세요"


"어디 어디 골프 치러 갑니다"


거의 이해를 못한다. 모자 쓰고 골프 복장이면 설사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도 눈치껏 짐작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면 골프의 모음 O를 길게 해야 하나 아니면 단모음으로 발음해야 하나 하고 급하게 머리를 굴려 둘다해보지만 역시 모른다. 모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모음과 붙은 자음 L을 정확하게 못해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검문소 직원 중에 중국인이나 우리 교민들은 금방  알아듣는다. 


R은 더 황당하다. 우리 가게는 세탁기 화재 방지를 위해 질소를 사용하는데 이 거래처 어카운트 넘버가 공교롭게도 R이 들어간다. 먼저 전화를 하면 그 번호를 묻게 된다. RD077이라고 천천히 그리고 똑똑히 말한다. 못 알아듣는다. 옆사람한테 바꿔준다. 그도 역시. R이 들어가는 단어를 말하면서 접근하지만 역시 캄캄하다. 골치 아프다. 차선으로 가게 이름을 말하면 찾을 수 있는데 오기로 계속 전화통을 붙들고 말한다. 결국 알파벳 순서를 말하면서  이해시킨다. 사실 0도 발음하기 쉬운 건 아닌데 이건 요령을 터득했다.' 지어로'를 빨리 붙여서 말하면 거의 비슷하게 들리는 듯했다.


흔히 많이 사용하는 '커피'도 소통이 안될 때가 있다.  지난여름 친구들과 좀 멀리 골프를 치러 갔었다. 전반 치고 손목이 아파서 기권하고 레스토랑에서 핫도그와 커피를 주문했다. 핫도그는 알아먹었다. 그러나 커피에서는 멍을 때렸다. 뭔 말인지 모른다는 표정. 앞에 엑센트가 있는데 우리 교민들은 보통 엑센트를 안 주거나 뒤에 줄 때가 많다. 이럴 땐 모른다. 그럴 땐 난 얘들이 바보라 생각이 든다. 핫도그를 시키고 내가 뭘 주문하겠나. 설사 나의 발음이 요상하더래도 그 근처에만 가면 알아먹어야 되지 않을까. 이건 아주 특이한 케이스다. 그곳이 아주 외진 곳이고 동양인이 많지 않은데다가 알바 학생이어서 더 더욱 그랬을 거라고 짐작한다. 맥도널드에서 커피 시키면서 코피라 해도 알아듣는다.


그 외에 갑갑한 게 한둘이 아니다. 영 딴판으로 발음되는 경우도 여럿 있다. 부룩 '쉴즈'가 이 경우다. 우린  한국에서 이렇게 귀에 담았다. 여기서도  쉴즈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간혹 있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도 한 명 있다. 중계를 들으면서도 당연히 쉴즈 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들리는듯했다. 이게 잘못됐다는 건 손님을 통해 알았다.

서양 남편과 결혼한 중국 아주머니인데 가을철에 사냥 옷과 슬리핑백을 주로 가져온다. 그때마다 '미시즈 쉴즈'라고 불렀다. 그녀는 살짝 쪼갠다. 그게 난 그냥 반갑다는 표시로 알았다. 하루는 어떤 아가씨가 전표도 없이 세탁물을 찾으러 왔었다.  


"이름이 뭐냐"


"시얼스"


난생처음 들어보는 손님 이름이다. 다 외우지는 못해도 안면 유무는 알 수 있다. 한참을 뒤적여도 있을 리가 만무하다. 결국  돌려보냈다. 뒷날 미시즈 쉴즈와 같이 왔다. 


"내 딸이요" 


"아, 죄송"


그때사 ' 내가 그녀를 부를 때마다 웃었던 게 그 뜻이었구나'라고 알았다. 쉴즈가 시얼스라고 읽는구나.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동떨어진 발음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국에서 외래어가 들어오면, 먼저 언론에서 소개할 때 적어낸 한국식 발음이 은연 중에 표준어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코스코도 한국에서는 코스트코라고 하고 아키아도 이케아라고 다수가 부른다. 여기선 아이키아 혹은 아키아라고 들린다.


출신지마다 발음은 제각각이다. 특히 중국 광동이나 홍콩 사람들은 발음을 똥그랗게 만다. 다운타운을 당 탕이라 부른다. 그들은 무조건  ㅇ 발음을 많이한다. 그래서 항상 시끄럽다. 호주 사람들도 약간 특이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발음 기호를 뛰어넘는다. DAY를 다이로 말한다. 폴란드 사람도 좀 이상하고, 그래도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눈치껏 알아챈다. 앞뒤 정황과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하면 대충 귀에 들어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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